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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과학 주도 시대’에 질문하는 철학자들

등록 2017-09-29 11:28수정 2017-09-29 11:44

이종관·김재인 두 철학자
뇌과학·인공지능 철학적 고찰
‘유물론적 환원주의’ 비판
인간다움에 대한 성찰도
포스트휴먼이 온다
이종관 지음/사월의책·2만2000원

철학은 근본을 따져 묻는 학문이다. 철학자는 어떤 주장이 기반을 두는 심층 전제가 무엇인지 드러내고, 그것이 과연 타당한가를 검토한다. 그런 철학자들이 최근에 인공지능, 인공생명 등으로 ‘인간의 정의를 뒤바꿔놓았다’고 호언장담하는 과학기술이 과연 무엇을 전제하며, 그것이 옳은지 따져 묻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독일 철학자 후설과 하이데거의 현상학을 전공한 이종관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는 <포스트휴먼이 온다>에서 최근 과학기술혁명의 미래인간관 중 가장 선도적인 흐름인 ‘트랜스휴머니즘’을 주요 검토 대상으로 삼는다. 트랜스휴머니즘은 1998년 옥스퍼드의 철학자 닉 보스트롬의 주도 아래 ‘세계 트랜스휴머니스트 협회’(WTA)를 만들면서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특이점 이론’의 주창자 레이 커즈와일 등 학계와 기업에서 광폭으로 활동하는 세계적 과학기술자들이 협회의 주축을 이루고 있다. 닉 보스트롬은 트랜스휴머니즘을 “노화를 제거하고 인간의 지적, 신체적, 심리적 능력을 대폭 향상하는 데 두루 이용되는 기술의 개발을 통하여 인간의 조건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가능성과 희망을 높여주는 지적이고 문화적인 운동”이라고 정의한다. 트랜스휴머니즘은 2045년께 나노·바이오·정보·인지(NBIC) 기술이 거듭제곱의 속도로 발전해 서로 결합하는 ‘특이점’에 이르면 늙지도 죽지도 않고 인간을 뛰어넘는 지적·신체적 능력을 보유한 ‘포스트휴먼’이 출현할 것이라 본다. 유발 하라리가 말한 ‘호모 데우스’(신이 된 인간)가 나타나는 것이다.

2014년에 나온 영화 <트랜센던스>에선 천재 과학자 윌(조니 뎁 분)이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뇌를 컴퓨터에 업로드한 뒤, 슈퍼컴퓨터와 결합해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예고편 영상 갈무리
2014년에 나온 영화 <트랜센던스>에선 천재 과학자 윌(조니 뎁 분)이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뇌를 컴퓨터에 업로드한 뒤, 슈퍼컴퓨터와 결합해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예고편 영상 갈무리
그렇다면, 트랜스휴머니즘이 전제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교수는 그것이 ‘유물론적 환원주의’라는 철학적 입장이라고 분석한다. 유물론적 환원주의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물질로 환원시켜 설명하려는 사고방식이다. 정신이나 문화도 물질로 환원될 수 있기 때문에, 과학기술로 얼마든지 구조를 규명해내고, 역으로 생산해낼 수 있다고 본다. 그렇기에 기능적 자기공명영상술(fMRI)이나 뇌자도(MEG) 측정 장치로 뇌의 작동 원리를 분석하면, 뇌에서 일어나는 생화학적 현상인 정신과 문화의 구조를 발견하고, 창조해낼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런 주장은 인간의 뇌를 컴퓨터에 업로드해, 인간의 의식이 육체를 벗어나 영생할 수 있게 된다는 데 이른다.

이 교수는 먼저 유물론적 환원주의의 문제점은 존재를 그것의 고유한 존재방식으로 드러내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예를 들자면, 책의 활자와 활자가 인쇄된 종이의 물리적 속성에서 책에 담긴 내용을 도출해내겠다는 태도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는 모든 것을 물체라는 한가지 존재방식으로만 이해하는 편협한 존재론에서 발병한 것”이라며 “존재하는 것은 단지 물체로만 존재하거나 또는 정신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존재방식의 다양성을 우선 구별하고, 연구하려는 존재자가 그 고유의 존재방식에서 연구될 때 그 존재자의 진리가 드러날 수 있다”고 말한다.

두 번째로 이 교수는 유물론적 환원주의는 필연적으로 ‘물질이 물질이 아니라는 역설’에 빠지게 된다고 짚는다. 유물론적 환원주의의 논리를 따른다면, 물질인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의 뇌 자체도 물질이다. 뇌과학이란 즉, 물질이 자신의 존재 원리를 규명하기 위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탐구를 하겠다고 나서는 꼴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과학이 말하는 물질 현상의 근본원리인 ‘인과론’을 벗어나 버린다. 뇌과학 자체가 인간은 외부의 물리적 자극에 반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성찰하는 자율적 존재임을 증명하는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뇌과학은 두뇌의 존재를 물질로 보는 환원주의적 존재론에 집착하면 할수록 현대과학에서 경멸의 대상인 독일 관념론과 같은 방향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는 패러독스에 빠진다”고 말한다.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
김재인 지음/동아시아·2만원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는 우리 사회에서 ‘알파고’로 상징되는 인공지능의 기술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인간다움에 관해 성찰한다. 질 들뢰즈 전공자인 철학자 김재인이 서울대에서 강의한 ‘컴퓨터와 마음’ 주제의 교양강좌를 책으로 풀어냈다. 몸, 마음, 지능, 학습, 기억 등에 관한 철학과 과학기술의 주제들을 놓고 지은이의 친근한 입말투로 ‘지상 강의’를 한다.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나 테슬라의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와 같은 명사들은 인공지능이 초래할 암울한 미래 인류사회에 관한 전망과 경고를 내놓고 있지만, 지은이는 인공지능 기술의 현주소를 살피면서 이런 막연한 공포가 지나친 것임을 보여준다. 물론 네트워크와 빅데이터의 증대, 컴퓨터 연산능력 향상은 지능 기계의 능력을 더욱 높이겠지만, 현재 기술에서 인공지능은 사람의 개입 없이는 성장하기 힘든 한계의 울타리 안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인간과 기계의 학습에 관한 많은 논의를 살펴보면서, 지금 ‘약한 인공지능’의 학습은 인간의 지도와 개입을 통해 발전하는 사실상 ‘지도학습’에 의존하며, 그것도 비교적 단순한 ‘되먹임 학습’의 유형임을 보여준다.

그렇더라도 여러 전문 영역을 넘보는 인공지능의 발전은 계속될 터이고, 이런 인공지능의 시대에 인간은 어떻게 인공지능과 더불어 살며 어디에서 인간다움을 찾고 즐길 것인가? 지은이는 무작위성을 허용하는 발산적인 삶, 곧 창조적인 삶이 무엇인지에 관해 성찰한다. 일정 수준으로 도달할 수 있는 전문 능력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무작위성과 시행착오를 거치며 얼마나 멀리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창조성이 필요하다고 그는 말한다. 인공지능과 대비되는 인간다움은 늘 새롭고 미적인 것을 만들어내려는 예술가의 태도라는 것이다.

과학과 인간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철학자들의 책들은 인공생명이 창조되고,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대체하는 시대에 첨단 과학기술과 어울리며 살아가는 우리의 길이 무엇인지를 묻는 데 철학이 여전히 필요함을 보여준다.

김지훈 오철우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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