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 외 42인 지음, 한국여성민우회 엮음/궁리·1만4000원 <온갖 무례와 오지랖을 뒤로하고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는 2016년까지 10년간 한국여성민우회의 누리집과 소식지 <함께가는 여성>에 실린 글을 선별해 묶은 책이다. 42명의 저자가 삶의 자리에서 경험한 불쾌함과 분노, 씁쓸함과 승리의 기억 등 온갖 것을 각각 5~6쪽 글로 꾹꾹 뭉쳐냈다. 털, 피임, 흡연, 바바리맨, 결혼, 집안일 갈등, 자녀 양육 등 글의 주제가 다양해, 누구든 어떤 글에서건 한번은 멈춰서지 않을 수 없을 듯하다. 그중 가장 맛깔나는 글. ‘신기루’라는 필명의 필자는 웃프고도 무서운 반지하 셋방살이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땅에 처음으로 반지하가 생긴 것은 신석기 시대. 너는 신석기에 생겨 오늘날 도시 빈민이 거할 곳이 되었구나.” 그는 반지하에 사는 여성 C, H, B와 함께 ‘반만 올라가면 1층’이라는 모임을 만든다. “경사가 좀 심한 집에 들어간 B는 집의 바닥 자체가 기울어 있어, 자다가 머리에 피가 쏠려 깬다고 한다”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이야기부터, “H의 집에는 낯모르는 대학생이 갑작스럽게 방문한 적이 있다. 어떤 남자가 한 달째 H의 집을 들여다보고 있더라는 제보를 했다. 여자들만 사는 집을 지켜본 남자나 제보한 남자나 소름 끼친다”라는 섬뜩한 경험담까지. 집이 침수돼 두 달간 나가 살았는데도 월세를 받아내고야 마는 집주인의 잔인함에 치를 떨며 그는 “한국에만 있다는 이 독특한 돈벌이용 주거 공간을 없애고 반지하 주거권에 대한 감수성 있는 자를 뽑겠다. 우리는 늑대들처럼 뭉칠 것이다”라고 외친다. ‘늑대처럼 뭉친’ 이들은 책 말미에서 책에 나온 글에서 뽑아낸,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 위한 행동강령을 선언한다. “더욱 적극적으로 정색하고 싸우겠다” “남자는, 여자는, 이라는 말을 쓰지 않겠다” “페미니스트 동료들을 계속 만날 것이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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