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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이토록 많은 커피를 마시는데, 왜 커피 농민은 가난한가

등록 2017-09-21 19:22수정 2017-09-21 19:51

누가 농민의 몫을 빼앗아 가는가
-농업 공급사슬의 권력 집중과 불공정 거래 관행 연구
르 바지크 지음, 김진환·한수정 옮김/따비·1만1000원

맛집 앞엔 줄이 늘어서고, 유명하다는 요리나 디저트를 먹으러 먼 지방이나 해외까지 가는 먹방의 시대. 그런데 정작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민들의 삶은 왜 이토록 힘겨울까. 살충제 달걀, 조류인플루엔자(AI), 광우병 등의 사건이 터질 때마다 공장식 사육의 위험성에 대한 관심과 우려가 치솟지만, 생산체계는 바뀌지 않는 이유는 뭘까?

<누가 농민의 몫을 빼앗아가는가>는 그 답을 찾아가는 책이다. 프랑스의 연구기관 ‘르 바지크’(시민을 위한 사회영향 연구소)의 연구 보고서인 이 책은 초대형 구매·유통업체가 지배하는 전세계 농업의 현실을 생생하고 간명하게 보여준다.

내가 마시는 스타벅스 한잔과 남미 커피 노동자의 삶은 의외로 긴밀하게 연결된다. 커피는 세계적으로 약 2500만명의 생산자가 재배하고, 5억명이 소비한다. 생산자는 대개 10헥타르 미만의 경작지를 가진 소농이다. 불과 5개 업체(네슬레, 크래프트/몬델리즈, 새러리, 프록터앤갬블, 치보)가 전체 커피 로스팅의 45%를 장악하고 3개 업체(노이만그룹, 이콤, 볼카페)가 커피콩 거래량의 절반을 차지한다. 전세계 공급사슬을 좌우하는 이들 업체는 자신에게 돌아갈 이익은 늘리고 농민에겐 점점 더 낮은 커피콩 가격을 강요한다. 공급 사슬의 다른 한쪽에 있는 소비자가 사는 커피 관련 제품 가격도 점점 올라간다. 카카오, 면화, 사탕수수, 바나나 등 전세계적으로 거래되는 많은 농산품 생산·유통에서도 거의 똑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급속한 도시화와 대규모 상업 영농의 증가에도, 여전히 전세계 농업의 대부분은 소농의 손에서 이뤄진다. 세계 인구의 3분의 1이 농촌에 거주하고 전세계 25억명이 생계를 위해 농업에 의존한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대 농업사슬의 밑바닥에 이들 소농이 있다면, 꼭대기에는 소수의 농화학·종자 회사, 무역·가공·제조업체와 대형 슈퍼마켓 체인이 있다. 이들은 농민이 최종 소비자에게 제품을 공급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좁은 길을 장악하고 농산물 생산과 가격에 엄청난 힘을 행사한다. 신젠타, 아벤티스, 몬샌토, 바스프, 다우, 바이엘, 듀폰 등 7대 기업이 종자와 농화학 분야를 지배하고, 아처 대니얼스 미들랜드(ADM), 벙기, 카길, 루이드레퓌스가 전세계 곡물 무역의 90%를 차지한다. 그런데 최근 이들마저 제치고 유통을 장악한 글로벌 대형 유통업체, 슈퍼마켓 체인이 최대 포식자로 올라섰다.

설탕을 만들기 위해 기르는 사탕수수는 대부분 사람의 손으로 수확해야 해서 주로 값싼 노동력이 있는 최빈국에서 재배된다.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에서 노동자들이 마체테라는 날이 넓은 칼로 사탕수수를 베는 일은 매우 위험하다. 노동자들은 수확 직전에 사탕수수의 마른 잎을 태우는 불과 연기, 살충제, 독이 있는 동물에 노출되기도 한다. 2009년 타이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모습. 셔터스톡, 따비 제공
설탕을 만들기 위해 기르는 사탕수수는 대부분 사람의 손으로 수확해야 해서 주로 값싼 노동력이 있는 최빈국에서 재배된다.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에서 노동자들이 마체테라는 날이 넓은 칼로 사탕수수를 베는 일은 매우 위험하다. 노동자들은 수확 직전에 사탕수수의 마른 잎을 태우는 불과 연기, 살충제, 독이 있는 동물에 노출되기도 한다. 2009년 타이의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모습. 셔터스톡, 따비 제공

식품 분야에서 대형 슈퍼마켓의 권력이 커지면서, 농민에게 불공정한 거래 관행도 늘어간다. 생산에서 유통까지 수직통합, 인수 합병으로 덩치 불리기, 자체 브랜드 상품 판매 등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소수 유통기업으로 권력이 집중된다. 가격 쥐어짜기, 우수 공급업체 목록에서 제외한다는 협박, 할인가격 소급적용, 공급업체에 대한 장기거래 할인 요구, 단기계약 또는 무계약, 각종 비용을 공급업체에 떠넘기기 등의 각종 무기가 이들 손에 있다.

이들의 요구를 받는 제조업체는 결국 생산국의 농민·납품업체에게 지불하는 농산물 가격을 낮추고, 농민과 노동자의 소득은 점점 낮아져 생계 유지가 어려울 정도다. 소농과 농업노동자의 생계불안, 아동노동, 불안정 고용, 환경 파괴가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특히 대형 슈퍼마켓 체인에 납품하기 위한 기업형 농업으로 인한 환경 파괴가 심각한 상황이다. 전세계 물 소비의 70% 이상이 농업과 식품 가공 분야에서 일어난다. 화학비료와 살충제 사용이 급속도로 는다. 예를 들어, 습한 열대 기후에서 대규모 토지 위에 단일작물로 바나나를 재배하려면 병충해 방제를 위해 살진균제, 살충제, 제초제 등 다량의 화학약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토양 오염, 물 부족, 생물 다양성 감소 등의 문제가 모두 이런 시스템과 얽혀 있다.

농지가 황폐화되면 살리지 않고 버려둔 채, 새로 숲을 불태워 농지를 만드는 현상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다. 농장이 대형화할수록 국경을 넘는 이주 노동이 가속화되고 농업과 식품 가공업 부문의 임시 노동자가 급증한다. 소농은 비효율적으로 간주돼 대형 유통업체의 계약을 따내지 못한다. 이 책은 이런 현실의 대안으로 국가, 농민, 소비자가 각각 실행할 수 있는 공정무역 운동, 농민의 조직화, 불공정 거래 관행 저지, 독점 규제, 농업 정책 변화 등의 영역에서 매우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는다.

현대 농업사슬을 통틀어 권력 집중은 구조적인 모습을 띠며, 농화학 회사와 종자 회사, 무역업체, 가공업체와 제조업체, 소매업체 같은 경제 주체에 권력이 집중되고 있다. 이들은 “최종 소비자에게 제품을 제공하는 데 반드시 거쳐야 할 좁은 길”을 소유했다. 따비 제공
현대 농업사슬을 통틀어 권력 집중은 구조적인 모습을 띠며, 농화학 회사와 종자 회사, 무역업체, 가공업체와 제조업체, 소매업체 같은 경제 주체에 권력이 집중되고 있다. 이들은 “최종 소비자에게 제품을 제공하는 데 반드시 거쳐야 할 좁은 길”을 소유했다. 따비 제공

그런데 여기까지 읽고 나면 농업이 대중의 관심 밖으로 완전히 밀려나버린 현재 한국에서 이 책을 펴낸 출판사의 속내가 궁금해진다. 게다가 이 책 한 권도 아니고 ‘따비 스터디’란 이름으로 앞으로 농업 관련 책을 줄지어 펴내겠다니…. 박성경 따비 대표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음식을 주제로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음식인문학’ 분야를 개척하고 꾸준히 관련 책을 내온 출판사로선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박 대표는 “다들 음식 이야기에 열광하지만, 먹는 것의 근원인 농업과 농수산물에 대해서는 논의도 하지 않고 책도 쓰지 않는다. ‘음식 포르노’란 말이 나올 정도로 음식에 열광하는 시대에 그 근원인 농산물이 어떤 방식으로 생산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책을 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박 대표의 출사표는 이렇다. “한국에서도 이마트를 비롯한 대형마트들이 농업과 농산물 가격을 결정한다. 정부의 농업 정책은 ‘소농들은 더이상 농사짓지 말고 대기업에 맡기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이제 농업, 농민은 다 포기하고 농민들에 대한 정책도 거의 없다. 지난 대선에서도 농업 관련 공약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농업에 대해 고민하는 사회학, 경제학 연구자나 전문 필자도 거의 없다. 이번 시리즈를 계기로 국내 젊은 연구자들이 우리 농업 현실에 대해 쓰는 책들을 적극 발굴하고 펴내겠다.”

<누가 농민의 몫을 빼앗아 가는가>는 그 시리즈의 용감한 첫발이다. 이어서 <농업변동의 계급 동학> <농민과 농업> <식량체제와 농업 문제> 등 ‘비판적 농업연구이니셔티브’(ICAS) 소속 유럽 지역 학자들이 쓴 3권의 책도 번역을 마친 상태다. 이니셔티브에선 농업 현실을 바꾸기 위한 취지로 책을 낸 자신들과 같은 뜻을 가진 한국의 작은 출판사와 연대하는 의미로 인세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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