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하지 못한 집안의 장남”인데도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병원 개업이나 대학병원 교수가 아닌 사회 소수자들의 건강을 챙기는 ‘사회의사’의 길을 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김승섭 교수는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대 보건대학원에서 노동자 건강에 대한 직업역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3년 고려대에 부임해서 세월호 생존학생, 쌍용차 해고노동자, 소방공무원, 성소수자 연구를 이끌었다. 삼성반도체 직업병, 동성결혼, 트랜스젠더 병역면제 소송 등 다양한 재판에서도 전문가로서 법정 증언을 하거나 소견서를 제출해왔다.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이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곧장 달려간 발자국이 분주하다.
20대 시기 자신의 화두는 “사회를 전체적으로 바꾸어내는 혁명의 전망 없이 나는 어떻게 해야 진보적으로 살 수 있을까,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였다고, “학생 시절의 공부와 활동은 앞으로 수십 년간 ‘스스로를 망치는 일과 싸우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만난 노동자들의 모습은 그에게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을 남겼다. “의과대학 본과 1학년 겨울방학 때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들이 모인 사무실에서 한달간 자원상근을 했다. 기타를 치면서 함께 노래를 부르다 기타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려고 주변을 둘러봤을 때 손가락이 열 개인 사람은 나 밖에 없었음을 알았다. 그때 느꼈던 묘한 낯섦. 밤새 민주노총 신문발송 작업을 하고서 모두가 곯아떨어져 있을 때 우유배달을 해야 한다고 새벽에 나가던 산업재해 노동자의 뒷모습에서 느낀 끈질긴 생명력 같은 것들 말이다.”
그가 바라는 아름다운 사회는 이런 것이다.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예민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 그래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자존을 지킬 수 없을 때 그 때 그 좌절에 함께 분노하고 행동할 수 있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점점 그런 인간을 시대에 뒤떨어진 천연기념물처럼 만들고, 타인의 고통 위에 자신의 꿈을 펼치기를 권장하고 경쟁이 모든 사회구성의 기본 논리라고 주장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게 저는 싫다.”
김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