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은실 지음/여이연·2만원 영화 <왕의 남자>(2005년)의 왕(정진영 분), 영화 <쌍화점>(2008년)의 홍림(조인성 분), 드라마 <굿 와이프>(2016년)의 김단(나나 분)은 모두 양성애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대중매체에서 양성애자가 모습을 드러낸 지는 꽤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양성애는 어떤 점에서 동성애보다 더 주변화되어 있는 정체성일지 모른다. 그만큼 양성애적 관계는 자신을 양성애라고 부르기조차 쉽지 않다. 실습 온 교생선생님, 전학 온 남학생을 보며 설렜던 감정엔 주저 없이 ‘첫사랑’이라는 정의를 내리지만, 양성애적 관계는 ‘정말 내가 저 사람을 사랑하는 게 맞는지’ 여러 차례의 확인과 재확인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박이은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여/성이론> 편집주간)이 12명의 양성애자 여성의 생애사를 인터뷰해 양성애를 탐구하는 책 <양성애>를 냈다. 지은이는 “이성애적 규범과 질서가 그토록 공고하기에 (…) 각 경험을 해석하는 해석의 장은 일종의 기울어진 운동장으로서 이성애적 경험이 실제 경험 유무와는 무관하게 의미를 얻어가는 위치에 있다면 동성애적 경험은 끊임없는 질문과 재질문, 확신과 재확신을 요구하는 위치에 있다”고 말한다. 지은이가 만난 인터뷰이들은 “‘양성애’나 ‘여성’이라는 정체성으로 온전히 설명될 수 없는 중층적인 사람들이었고, 이들 각각이 자신의 삶을 의미화하는 지점이 상이하며, (…) 성차의 경계를 넘나드는 감각을 익힌 이들”이었다. 이에 대해 “유동적인 삶의 태도와 실천을 통해 경계를 흐리는 양성애/여성 주체의 이러한 모호성은 경계를 구축함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고착화시키고 그를 통한 자원 흐름의 지배 질서를 공고히 하려는 체제에 양성애/여성 주체라는 횡단적 주체가 던지는 정치적 질문이자 저항”이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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