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아닌 것 없다/복효근 지음/천년의시작·9000원, 물에서 온 편지/김수열 지음/삶창·9000원
지지난해 제2회와 지난해 제3회 신석정문학상 수상자인 복효근(사진 왼쪽)·김수열(오른쪽) 두 시인이 나란히 신작 시집을 내놓았다.
시집 <따뜻한 외면>으로 제2회 신석정문학상을 받은 복효근 시인의 여덟번째 시집 <꽃 아닌 것 없다>는 10행을 넘지 않는 짧은 시들로 이루어졌다. 이 시들을 두고 시인 자신은 “높고 크고 화려하고 힘센 것들 앞에 조브장해진 내 어깨를 닮았다”(‘시인의 말’)고 썼다.
짧은 시가 비록 작고 초라해 보일지는 몰라도 긴 시에 비해 오히려 높은 밀도와 긴장감을 지니는 경우가 많다. 군더더기를 최대한 덜어낸 뒤에 남은 선승의 사리와 같은 몇 마디는 얼마나 서늘하고 날카로운가.
“제 몸에서 가장 먼 곳까지/ 그러니까,/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곳까지/ 꽃을 쥔 손을 뻗었다가/ 가만 펼쳐 보이는/ 꽃나무처럼”(‘간절하게 참 아득하게’ 전문)
“칠흑 어둠에 몸을 씻은 별처럼/ 그 별의 잔등을 밤새 문지른 아침 이슬처럼”(‘시’ 전문)
꽃과 꽃나무 그리고 시는 사실은 하나라 할 수 있다. 간절함과 아득함, 별과 이슬이 가리키는 것은 아름다움이라는 추상적 가치 그리고 그 가치를 구현하는 현실태로서 시가 아닐까. “소신공양”하는 “촛불(佛)”(‘촛불’), 그리고 “너도” “나도” “절해고도”(‘섬’)라는 말장난 같은 시구들은 말의 심지와 그림자를 치열하게 응시한 결과 얻어지는 꽃 같고 별 같은 소출이라 하겠다.
<물에서 온 편지>는 시집 <빙의>로 제3회 신석정문학상을 받은 김수열 시인의 여섯번째 시집이다. <빙의>와 마찬가지로 제주 토박이말을 적극 동원하는 가운데 섬의 역사와 현실, 인간을 통해 보편적 가치와 진실에 다가가려는 노력이 두드러진다.
“이레 화르르륵 저레 다울리라/ 저레 화르르륵 이레 다울리라// 작대기 들고 바당물 탕탕 치당보민/ 팔딱팔딱 족바지에 멜이 가득// 멜 들었저 멜 거리라/ 멜 거리라 멜 들었저”(‘원담’ 부분)
“물구덕 지듯 칠성판 지엉 먼물질 나강/ 귀상어에 쫓기고 샛바닥이 퍼렁허게 시려/ 꼭 죽어질 것만 같을 때// 아이고 내 새끼덜, 저 큰놈 족은놈/ 갯것이서 ‘어멍, 어멍’ 부르는 소리 들리면/ 아, 살았구나/ 저것들이 날 살리는구나/ 내 울타리구나”(‘울타리’ 부분)
멸치 잡이의 풍성함, 그리고 평생을 물질로 자식 건사한 제주 여성의 생명력을 노래한 이 시들에서 알쏭달쏭한 토속어들이 시의 음악성을 한껏 드높이는 것을 보라. “섬에서 멀어진다는 건/ 다시 섬에 가까워진다는 것”(‘비양도에서 한나절’)이라는 통찰은 굳건하게 제주 섬과 제주 말을 지켜 온 이의 경험이 낳은 지혜라 하겠다.
글 최재봉 기자, 사진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