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의 노동자-뉴딜이 기획한 가족과 여성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 지음, 김현지·이영주 옮김/
갈무리·1만7000원
이탈리아 출생의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74)는 이탈리아 파도바대학의 정치법학부 및 국제학부 교수이면서 활발히 페미니즘 운동을 벌여온 활동가이기도 하다. ‘가사노동에 임금을 지급하라’ 운동 등 다양한 반자본주의 운동에 수십년간 참여해왔다. 그의 책 <집안의 노동자-뉴딜이 기획한 가족과 여성>은 1983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나왔고, 한국에서는 이제야 번역 출간됐다.
이 책은 1929년 대공황을 맞아 1930년대 초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추진한 뉴딜 정책이 가족제도 강화로 귀결되는 과정을 그려낸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1933년 취임했을 당시 대공황으로 인해 전국적으론 실업자가 1500만명에 달했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조언을 받아들여 루스벨트 정부가 시작한 뉴딜 정책은 정부 지출을 확대해 댐과 고속도로 건설 등 대규모 토목사업을 벌여 공공 일자리를 늘리는 것을 핵심으로 했다. 노동자들이 임금을 사용하면 내수가 진작돼 경제가 다시 성장할 것이라는 계획이었다.
1975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가사노동에 임금을 지급하라' 그룹의 콘퍼런스에 참석한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타. 갈무리 제공
하지만 뉴딜 정책으로 발생하는 일자리는 주로 남성들에게 주어졌다. 1933~1945년 노동부 장관이었던 프랜시스 퍼킨스는 “부유한 용돈 벌이 노동자는 사회를 위협하는 존재”라며 가정과 직장에서 이중으로 노동을 하는 여성을 비난했다. 많은 이들이 여성이 남성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고 생각하며, 대규모 남성 실업의 원인을 대공황 이전에 경제활동에 진입한 여성에게 돌렸다. 1932년 미 의회는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여성을 겨냥해 ‘한 가족 내에 두 명이 공직에 고용되는 것’을 금지하는 연방경제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이 무효가 된 1935년까지 해고된 1603명 중 3분의 2가 여성이었다. 그나마 주어진 일자리에서도 남녀 간 임금 격차는 30~50%에 달했다. 남성들이 이끌던 노조도 여성 노동자들을 등한시했다. 1929년부터 1939년까지 여성노동조합연맹은 미국노동총동맹으로부터 파업이나 동원, 재정 지원 등 어떠한 도움도 받지 못했다.
1958년 미국에서 파업한 여성 노동자와 아이들이 ‘우리 엄마의 피켓라인을 넘지 마’, ‘우리 엄마는 파업 중’, ‘학교 끝나서 엄마를 돕는 중’이라고 쓰인 손팻말을 목에 걸고 있다. 갈무리 제공
대신 루스벨트 정부는 가족을 복구하는 일을 중요 사업으로 삼아 주택 건설을 장려하고, 주택담보융자 자금을 제공하는 법안을 승인했다. 광고에는 집안을 완벽하게 청소해서 마지막 한 마리 세균까지 남김없이 죽이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아끼는 법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가사노동을 사랑으로 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가사노동을 하지 않는 것을 비난하는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 달라 코스타는 “여성에겐 가사와 육아를 전담해 노동력이 계속 생산 또는 재생산되도록 해 노동 생산성을 유지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성장시키는 역할이 맡겨진 것”이라고 말했다.
1926년 미국의 한 대학에서 가정학 수업 시간에 여학생들이 재봉과 바느질을 배우고 있다. 갈무리 제공
100여년 전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남성 실업의 책임을 여성 노동자에게 돌리고, 가사와 육아의 부담을 여성에게 전담시키는 모습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도 전혀 낯설지 않다.
김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