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주 지음/휴머니스트·2만4000원 전기가 보급돼 밤낮의 구분이 사라지고, 화려한 쇼윈도를 갖춘 고층 백화점이 등장한 1930년대 경성에서 조선의 대중은 빠르게 구경거리에 중독되어 갔다. 당시의 가장 핫한 구경거리는 ‘신여성’들이었다. 가부장적 유교 사회였던 조선에서 여성들이 집 밖으로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충격적인데, 단발에 양장, 립스틱까지 바르고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은 화젯거리로 삼기에 딱 좋았다. 신여성들을 ‘불량소녀’로 호명하며 지탄한 배경엔 식민지 남성 지식인들의 좌절이 있었다. 근대라는 새로운 시공간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을 여성에게 투사해 무질서를 바로잡는다는 명목으로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1930년대 경성의 신여성들이 어떻게 ‘불량’으로 매도되고 가부장적 구질서 안으로 회귀하는지 빼곡한 사료를 토대로 문화평론가 한민주가 <불량소녀들>에 담아냈다. 1931년에 나온 잡지 <신여성>에서 한 신여성은 이런 남성 지식인의 표리부동을 이렇게 꼬집었다. “그들은 도라서서는 점잔케 부르짓는다. ‘조선의 신여성이여! 웨 그대들은 허영의 길로만 다러나느냐? 어쩌자고 그대들은 이 쓰러저가는 사회를 돌보지 안느냐? 조선의 여성이여! 그대들은 분을 바르지 마러라! 금가락지를 빼여버려라 (…)’ 하고 그럴연하게 굴지만 한편으로는 ‘여보게 신흥사 안 나가려나, 택시를 불럿네!’ 따위 수작을 다방골 큰 골목에서 호긔 잇게 뿌리며 ‘내가 사랑한다는 기념으로 이것을’ 하며 보석 반지를 선사한다, 진주 목거리를 사보낸다 하야 자기의 훌늉한 완구를 삼으려고 가진 추태를 다하고 잇다”고. 김지훈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