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68) 명지대 석좌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창비) 서울편 1, 2권이 최근 출간됐다. 1993년 첫권이 나온 이 답사기 시리즈는 그간 8권의 국내편과 4권의 일본편이 나와 모두 380만권이 팔렸다. 25년 가까이 국내 출판 시장을 지배하면서 초장기 밀리언셀러 시리즈란 수식을 얻었다.
서울편 1권은 종묘, 창덕궁, 창경궁 등 궁궐을 다뤘고, 2권은 한양도성, 덕수궁과 성균관 등을 다뤘다. 온라인서점에선 이미 8천권이 예약판매돼 답사기의 인기가 식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16일 서울 중구 정동 컨퍼런스하우스달개비에서 열린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유 교수는 “원래 3권까지만 내고 끝내려 했는데, 북한에 가게 돼서 시즌 2로 북한 답사기를 내놓았다. 그런데 제주, 충북, 서울, 경기 지역에서 우리 지역은 안 쓰느냐는 항의가 들어와서 시즌 3을 썼고, 그사이에 한-일 관계가 삐뚤어지는 걸 보면서 ‘우리 국민이 일본을 너무 모른다’는 생각에 일본편을 썼다. 그러다 보니 내 나이가 70살이 거의 다 됐다”고 말했다. 그는 “화가들도 40대에 그린 작품과 60대에 그린 작품이 다르듯, 1권의 내 문체와 10권의 문체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40대엔 샤프하게 세상 조지는 맛도 가지고 글을 썼는데 나도 나이가 들었는지 옛날처럼은 못 쓰겠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일본 교토는 ‘사찰의 도시’, 중국 쑤저우는 ‘정원의 도시’라고 하는데, 서울은 ‘궁궐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어느 왕도를 가도 궁궐을 5개 가진 도시는 서울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서울편 2권의 첫머리에 나오는 한양도성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기대하면서 썼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양도성은 지난 3월 사전 심사에서 ‘등재 불가' 판정을 받아 세계유산 목록에 이름을 올리는 데 실패했다. 그는 “1990년대 한국의 문화외교가 세련됐다면, 서울 5대 궁궐을 묶어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를 시켰을 텐데 창덕궁과 종묘만 등재시켰다. 앞으로 등재 영역을 확대해서 궁궐 5개를 모두 포함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편은 모두 4권으로 구상 중이다. 서울편 세 번째 권에선 인사동, 북촌, 서촌, 성북동 등 도성 둘레 지역을, 네 번째 권에선 북한산과 한강을 중심으로 암사동 선사 유적 등을 다룰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앞으로 표암 강세황, 혜원 신윤복 등 조선 후기 화가의 삶을 다룬 <화인열전>과 10년 전쯤 절판된 추사 김정희의 전기 <완당평전> 개정판을 쓴 뒤 답사기 집필로 돌아오겠다고 밝혔다. 유 교수는 “이 시리즈는 20권까지는 내지 않을까 생각한다. ‘3보 사찰’인 송광사, 해인사, 통도사도 안 썼고, 섬 이야기도 없다. 진주와 전주, 강릉 같은 고도들과 경기도 이야기도 아직 못 썼다”고 말했다. 중국편 출간 계획도 밝혔다. 유 교수는 “봄가을로 중국 답사 여행을 함께하는데 그렇게 돌다 보면 언젠가 답사기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저를 밟고 넘어서 더 좋은 책을 써줄 사람이 나왔으면 한다. 내수용이 아니라 수출용이 나와야 한다. ‘내 두 다리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를 딛고 한마음으로 우주를 향해 글을 쓴다’고 한 중국의 린위탕(임어당)의 말처럼, 한국인의 혼을 서양사람들의 논법에 맞는 언어로 풀어서 세계 속에 알리는 사람이 나온다면 명나라 진린 제독이 이순신 장군을 두고 말한 것처럼 ‘흐린 태양을 목욕시키는 공’을 세우는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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