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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정치적 동화? 이젠 낼 수 있다 생각했죠”

등록 2017-08-09 18:44수정 2017-08-09 21:40

김려령 신작 동화 ‘플로팅 아일랜드’
12살 아이 강주의 시선으로 본
세상의 차별·배제·불평등·혁명
8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에서 만난 소설가 김려령은 “요즘엔 아이들을 사람이 아니라 목표를 정해놓은 기계처럼 키우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너는 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 아이들이 사는 즐거움은 싹둑 없어지는 거다. 아이들을 제발 놀게 놔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8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에서 만난 소설가 김려령은 “요즘엔 아이들을 사람이 아니라 목표를 정해놓은 기계처럼 키우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너는 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 아이들이 사는 즐거움은 싹둑 없어지는 거다. 아이들을 제발 놀게 놔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영화로도 만들어진 소설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로 잘 알려진 작가 김려령(46). 청소년도 볼 수 있는 이런 소설만이 아니라 <너를 봤어>, <트렁크>같이 수위 높은 성애 묘사가 있는 소설과 동화까지 폭넓은 작품 활동을 해왔다. 최근 동화 <플로팅 아일랜드>(비룡소)를 낸 김 작가를 8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에서 만났다.

이 동화의 씨앗은 북콘서트에서 만난 한 초등학생이 뿌려줬다. “맨날 바빠요. 학교 갔다 학원 가야 하고. 근데 저는 항상 같은 자리예요”라고 작가에게 털어놓는 아이에게 김 작가는 “너 자신을 너무 가까이에서 봐서 그래. 너는 충분히 움직이고 있어. 유치원 때 생각을 해봐”라고 아이를 다독였다. 김 작가는 “그때 섬이라는 게 저한테 박힌 거예요. 아이들 각자가 하나의 섬이잖아요. ‘아, 그거야’ 하고 막 써내려 갔어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동화를 완성한 것이 6년 전. 발표할 때를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그동안 어른들이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어요. 세월호도 그렇고 그 이전부터도 어른들은 아이들이 버티는 삶을 살아야 하는 세상을 만들어 놨단 말이에요. 아이들은 삶을 살 게 아니고 놀아야 하거든요. 그런데 ‘아이들한테 세상이 아름다워. 희망을 가져’라는 동화를 내는 게 무책임해 보였어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지난해 말, 이제는 동화를 세상에 내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촛불집회 때문이었다. “저도 촛불집회에 참석했었어요. 남녀노소 없이 뭉쳤잖아요. 아이들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모처럼 멋있었잖아요. ‘이젠 희망을 말할 수 있는 때가 됐다’는 생각을 했어요.” ‘키질하듯이’ 지금보다 2배가량 됐던 초고를 줄여 동화 <플로팅 아일랜드>를 내놨다. “그림과 글이 착 붙어서, 서로 밀리지 않아요. 예쁨 받으려고 태어난 아이 같아요”라고 만족스러워했다.

이 동화는 외부에선 ‘부유도’라고 불리는 한 섬으로 부모님과 함께 휴가를 떠난 열두살 아이 강주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 섬은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쓰레기산이 있는 ‘하리마을’과, 노면전차(트램)가 다니고 깨끗한 분수가 있는 유럽의 도시 같은 ‘플로팅 아일랜드’ 지역으로 나뉘어 있다. 하리마을 사람들은 부유한 지역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자기 마을로 가져다가 버리는 일을 하지만, 깨끗한 물이 나오는 이곳의 분수를 마실 수가 없다. 하리마을에 사는 또래 아이들과 즐겁게 어울리던 강주는 자기도 모르게 변화의 불씨를 댕긴다. “이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서 가상의 세계를 만든 거죠.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보이는데 어느 순간 우리들의 이야기인 것을 깨닫는 거예요. 잘못된 것을 바꾸는 것은 문제를 인식하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8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에서 만난 소설가 김려령은 “요즘엔 아이들을 사람이 아니라 목표를 정해놓은 기계처럼 키우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너는 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 아이들이 사는 즐거움은 싹둑 없어지는 거다. 아이들을 제발 놀게 놔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8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에서 만난 소설가 김려령은 “요즘엔 아이들을 사람이 아니라 목표를 정해놓은 기계처럼 키우는 것 같다. 아이들에게 너는 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그 아이들이 사는 즐거움은 싹둑 없어지는 거다. 아이들을 제발 놀게 놔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플로팅 아일랜드>는 차별과 배제, 불평등, 혁명과 같이 동화에선 잘 다뤄지지 않는 정치적 주제를 담고 있다. “사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도 판타지 소설이지만 정치적인 내용을 담고 있잖아요. 우리는 항상 정치적 상황에서 살아가요. 제가 사는 성남에선 무료급식에 교복 자율화, 청년수당의 혜택을 주는데, 그건 정치로 분배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오지 않는 것이거든요.”

김 작가가 그동안 써온 작품을 보면, 동화와 청소년물 소설, 성인들을 위한 소설의 비율이 비슷하다. 주로 소설을 쓰다 한두 권 정도 동화·청소년책을 내는 작가들이 많은 문단에선 드문 일이다. 그래서 <완득이>를 좋아하는 중학생이 ‘김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고 해서 청소년책인 줄 알고 짙은 성애 묘사가 많은 <너를 봤어> 같은 소설을 보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다고 한다. “세 가지 장르의 글을 쓰는 데서 오는 대단한 장점은 낯설게 볼 수 있다는 거예요. 동화를 쓰지 않고 소설만 썼다면 지쳐서 이렇게 오래 글쓰기를 해오지도 못하고, 시야도 많이 좁았을 거예요. 그래서 후배들한테 동화를 공부해보라고 제안하기도 해요.”

김 작가는 내년엔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한 장편소설을 쓰고 단편소설도 꾸준히 낼 계획이다. “단편을 주기적으로 써야 해요. 단편은 찰나를 잡아내는 능력을 단련시켜주기 때문에 단편을 쓰지 않으면 흐트러져 버리거든요. 쓰지 않으면 그 사실을 절대 모르죠. 내년엔 아주 바쁠 거예요.”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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