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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부축 대신 한쪽 팔만 살짝 내밀어 주세요

등록 2005-11-17 17:19수정 2005-11-18 13:56

인터뷰 초반 말을 아끼던 최민석씨는 대답 중간중간 수줍은 듯 얼굴을 가리며 환히 웃곤 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인터뷰 초반 말을 아끼던 최민석씨는 대답 중간중간 수줍은 듯 얼굴을 가리며 환히 웃곤 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정말 하기 싫은” 안마·침술 배우면서 수능 준비 책은 쏟아지는데 점자로 배우는 건 한계 대학선 친구들이 교과서 타이핑해 파일로 만들면 컴퓨터 음성으로 전환해 들으면서 공부 동정은 “노 생큐” 동등한 대우 받고 싶어
권은정의 인터뷰 무제한/서울대 법대 시각장애인 학생 최민석씨

캠퍼스의 가을은 언제나 천국 같다. 싱그러운 젊음과 성숙한 자연이 빚어내는 하모니. 지금 구리빛 햇빛이 낙엽 사이를 뚫고 있다고 최민석(23)씨에게 말해주었다. 나도 풍경 읽어주는 여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안고서 말이다. 완전실명 시각장애인으로 서울대 법대 2학년에 재학 중인 그는 입학 당시에 화제가 되었다. 지금은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지가 더 궁금했다. 그 많은 책들이 점자로 되어 있진 않을 텐데 도대체 무엇으로 공부하고 있을까? 그는 시각장애인 학생들의 학습권 문제를 1학년 때 이미 구체적으로 제기한 바 있다. 그동안 어떤 진전이 이뤄졌는가?

대학 2년새 사회적 벽 많이 느껴

“친구들이 타이핑을 해주고 있어서 어느 정도는 책으로 공부할 수 있습니다.”

다섯 명 정도의 급우들이 봉사장학생으로 그의 교재 만들기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장애인 급우를 도와주고 장학금을 받도록 학교에서 마련한 제도다. 교과서를 나눠 타이핑해서 파일로 만들어 주면 컴퓨터에서 음성으로 전환시켜 듣는다. 아예 처음부터 책 내용을 파일로 구할 수 있다면 번거로운 수작업의 절차를 생략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 점을 민석이 제안했던 거다.


“그게 출판사 판권 등등의 문제가 얽혀 있어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어요. 유독 출판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직 사회 전반적인 틀이 안 짜여 있어서 연결이 안 되는 것이더군요. 나름대로 생각한 방법이 있었지만 어려워서 포기했어요.” 일단은 포기했다는 말로 들렸다.

사실 민석의 경우 읽을 수 있는 게 없으면 공부를 할 수가 없다. 비록 점자로 책이 만들어져 있다 해도 될까 말까다. 점자는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공부가 높은 단계로 올라갈수록 엄청난 양을 빠른 시간 안에 소화해야 하는데 점자는 한눈에 스크린 하기가 절대 불가능하니 핵심내용 체크, 그런 점에서 겨룰 수가 없다. 그래서 그는 듣는 쪽에 포인트를 둔다. 듣기에서는 자유자재로 속도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까지 일반학교에 다니다가 녹내장 치료를 위해 3년을 쉬어야 했다. 결국 시력을 되찾지 못하고 맹학교에서 4학년으로 시작했다. 지금도 평점이 만점 가까운데 어릴 적에도 그랬단다. “3년을 쉬었다가 학교를 갔더니 공부가 너무 재밌었어요. 관성의 법칙인가? 그냥 쭉 그렇게 공부를 했지요, 뭐.” 공부가 제일 쉽다는 말이 나올 것 같다.

고등학교까지 맹학교에 다니다가 일반대학에 진학을 하였으니 이를 두고 일반교육이 그를 다시 안았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대학에 들어와서 새삼 제가 사회적으로도 장애자가 돼 있다는 사실을 느꼈어요. 맹학교를 다닐 때는 친구들이 모두 같은 처지이니 그 안에서는 차이나 차별을 느끼지 못했거든요. 인간관계에서 차단되어 있구나, 그 벽이 아주 높구나,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서로 모르는 게 너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지요.”

2년 사이에 그 벽을 없앨 수 있다고 기대한다면 매우 성급하거나 바보스런 생각일 것이다.그러나 그 벽을 없애기 위한 시도는 입학 때 이미 시작되었다. 당시 법대 학장이었던 안경환 교수는 그가 입학하는데 “법대로 해서 안 될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하기까지 했었다. 비장애 학생들보다 30-40배 이상 돈이 들어간다고 학교당국에서도 반대가 심했다. 그렇다면 법대 자체적으로 재원마련을 해보겠노라고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학장이 큰 교회의 유명목사까지 찾아가 청을 넣었을 정도였다 (결국 성사되지 못했지만).

제발로 걷고 제힘으로 책을 보는 ‘비장애’에 익숙해져 있는 모든 학교가 여전히 장애학생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아주 내켜하지 않는다. 지불해야 할 물적, 심적 비용이 너무 높다고 고개를 내젓는다. 국가조차 그렇다. 그러니 통합교육이 요원한 것이다. 민석은 그 점이 몹시도 통탄스럽다. 얼마나 목말랐던가. 함께 뒤섞여 공부하고 싶었다. 볼 수는 없지만 그게 그리 다르지 않다고 친구들에게 같이 지내며 보여주고 싶었다.

그는 대학 입시공부를 혼자 힘으로 했다. 맹학교에서는 대학진학 같은 것을 안 가르친다. 안마와 침술이 맹학교의 주요과목이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안마실습에 침술 공부를 하고 집에 돌아와 저녁때에 비로소 수능공부에 매달렸다. 학교공부를 게을리 할 수도 없었다. 안마와 침도 늘 1등이었다.

“어쩔 수 없잖아요. 내신등급을 잘 받으려면. 하지만 나는 정말 안마가 싫었어요.”

책 읽어준 가족들 큰 힘 돼

자기가 우리나라 교육의 불합리성을 온몸으로 받아낸 사람이라며 쓴웃음을 짓는데 그 미소가 아주 쓰라리다.

“시각장애인은 왜 그런 교육만 받아야 하는 거지요? 처음부터 동등하지 못한 조건에서 교육을 시켜놓고 나중에 장애인 할당제니 하는 방식으로 결과적으로만 혜택을 주려고 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 사회를 이겨내는 데는 당연하게도(!) 가족의 힘이 유일한 것이었다. 어머니와 누나가 어려서부터 세상의 모든 책을 읽어주었다. 대학 입시공부 할 때는 아버지도 함께 수험생이 되었다. “책은 자꾸 쏟아져 나오는데 그걸 점자로 옮기는 데는 시간적 제한이 너무 많아요. 한 권을 만들려면 보통 두 달은 걸려요. 퇴근하고 돌아오신 아버지가 새벽까지 책을 읽어주셨어요.”

수학공부는 그림을 그려 톱니바퀴 롤러로 스펀지 위에 대고 자국을 만들어 표현하면 그 흔적을 만져보고 도형문제를 풀었다. 민석은 그걸 그냥 담담하게 말하는데 그 지난함이 온몸으로 전달된다. 슬픔은 아니었지만 그의 그런 담담함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공부할 때는 1시간에 4천원씩 주고 아르바이트 학생을 썼다. 그는 자원봉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자원봉사는 저와 그 사람과의 관계를 수직적 관계로 만들어서요. 한쪽은 일방적으로 고마워해야 하고 한쪽은 베푼다는 식으로 간다는 게 좀…. 자원봉사를 베푼다는 개념이 아니라 나눈다고 생각하면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겠지요.”

누구보다도 봉사나 배려에 대해 익숙하겠거니 싶지만 정작 그는 무지 싫어하는 것 같다. 그는 어떤 동정도 ‘노 탱큐’다. 고3 때 십년 동안 같이 지내던 안내견이 센터로 돌아갔다. 관절에 이상이 생기는 바람에 안내견은 민석을 남겨두고 가버렸다. 하지만 두 시간씩 걸리는 등하교 길을 그는 혼자 다녔다. 참 대단하다고 하자 의아한 듯 되묻는다. 다른 학생들한테도 그렇게 말하나요? 학교에 혼자 다니는 거 보고 칭찬해 주나요? 도움 없이 혼자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그가 원하는 바다. 덤인 듯 특별하게 주는 혜택이 아니라 일반적이고 동등한 대우. 그 ‘동등함’의 의미를 누구보다 그가 잘 알고 있는 듯하다.

학교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고 나왔다. 그는 내 팔꿈치를 가벼이 잡은 채 한 발짝 정도 뒤에서 걷는다. 거의 팔짱을 낀듯해서 내 기분마저 좋아졌다. 민석은 자기 팔을 잡으려하지 말고 그냥 한쪽 팔을 내밀어 주면 된다고 일러주었다.

“장애인들에 대해서 알면 어떻게 도와줄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지요. 아주 간단한 걸로 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사람들은 그걸 잘 모르는 거 같아요.”

지금 학내 전체에 장애인 학생들이 30여명 정도 있다. 장애의 정도나 종류가 달라서 욕구나 필요사항이 모두 다르다. 학교에서 기본방향은 잡았어도 세부적으로 들어가 보면 아직 멀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현실이다. 하지만 모른 척하던 옛날과 비교하면 분명히 크나큰 진전이다.

친구들은 장애에 대한 편견 고쳐

“올라가는 계단이 열 몇 개 정도 있어요.” 그와 걷는 게 금방 익숙해진 내가 길을 설명해주었다. 캠퍼스 여기저기 계단 투성이었다. ‘걷기 좋은 길’ 프로젝트 덕분이었다. 다친 다리 때문에 계단에서 머뭇거리는 나와 민석이. 함께 가는 게 바로 이런 것이구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권은정/전문 인터뷰어
권은정/전문 인터뷰어
몇 시간동안 만나며 그와 나 사이에 어떤 장애가 있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법대의 한인섭 교수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민석이와 함께 공부하면서 학생들이 장애라는 게 실은 장애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 같다. 우리가 모르던 것을 알게 해 주니 그는 모두에게 행복의 원천이다.” 그를 강의실로 데리고 가는 여학생이 우리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복도를 메운 학생들 틈에 섞여 민석은 이내 사라졌다.

민석이 걸어갈 길은 우리가 어떤 길을 택할지에 달려 있다. 함께 뜻 모아 만들고 닦지 않으면 그나 우리나 길을 찾지 못할 것이다. 그와 우리의 길이 달라야 할 이유를 나는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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