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링허우, 사회주의 국가에서 태어나 자본주의를 살아가다
양칭샹 지음, 김태성 옮김/미래의창·1만4000원
바링허우(80后). 1980년대에 태어난 세대를 일컫는 중국말이다. 1980년 1가구 1자녀 정책이 시행된 이후 태어난 이들이기에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을 한몸에 받은 ‘소황제'를 떠올리는 이들도 많다. 언론이나 소셜미디어에서 바링허우들은 ‘돈을 물 쓰듯 하는 부유층'이거나, ‘오냐오냐 자라서 기본예절도 갖춰지지 않은 진상 부리는 젊은이들' 정도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하지만 1980년생으로 그 자신 바링허우 세대인 학자 양칭샹(37)이 경험하고 목격한 바링허우 세대의 모습은 전혀 다르다. 그가 <바링허우, 사회주의 국가에서 태어나 자본주의를 살아가다>에서 밝힌 중국의 바링허우 세대는 한국의 ‘헬조선' 세대가 처한 상황과 다르지 않다.
책은 중국 국무원에서 제작한 30초짜리 영상 <중국 국가이미지 선전영화: 인물편>을 본 감상으로 시작한다. 중국 정부는 2011년 당시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미국을 방문하기 전날 밤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의 대형 모니터에서 이 영상을 반복 상영했다. 미국 프로농구(NBA) 선수인 야오밍, 우위썬(오우삼) 감독 등 유명인들이 줄지어 나오는 이 선전영화에 대해 지은이는 “어떠한 감동이나 흥분도 느끼지 못했다. 마치 어딘가 다른 세상의 공연을 본 듯한 기분이었다”고 썼다.
위화감을 느끼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해당 영상물을 보기 며칠 전 살던 임대아파트에서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당시 지은이는 다른 3명의 젊은이와 함께 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다. 세입자 4명은 각자 매달 평균 20만원 정도 되는 집세를 냈다. 하지만 그가 산 지 1년쯤 된 시점에 집주인이 부동산 중개회사에 집을 맡긴다며 이들을 쫓아낸 것이다. 부동산 중개회사는 집을 불법으로 개조해 방 3칸짜리 집을 5칸으로 늘린 뒤 더 많은 임대료를 주인에게 돌려줬다.
이 집은 지은이가 1년 반 동안 세번째로 이사한 집이었다. 첫번째 살던 집은 네평 정도 되는 작은 공간으로, 열 가구가 넘는 사람들이 공용화장실 하나를 썼기 때문에 목욕이나 취사를 할 수가 없었다. 월세는 13만원이었다. 두번째 살던 집은 다세대 주택의 거실을 막아 만든 네평짜리 작은 공간이었다. 이 두번째 집의 문제는 방들이 불투명 유리로 나뉘어 있어 입주자들의 사생활이 모두 이웃에 드러난다는 점이었다. 어느 날 중국의 유명 작가인 리퉈가 이 집에 왔을 때 칸막이 옆에 젊은 부부가 사는 것을 보고 지은이에게 물었다. “저 사람들이 사랑을 나눌 때는 어떻게 하나? 소리가 다 들릴 게 아닌가?” 지은이는 그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이처럼 허술한 임대공간에 살다 보니 어쩌면 사랑을 나누고 싶은 욕구마저 사라지게 된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은이의 생활 환경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베이징의 대다수 고층 건물엔 지하 공간이 있다. 주차장이나 창고 용도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하지만 대부분 이런 공간은 새장처럼 여러 개의 방으로 개조되어 사람들이 세 들어 산다. 춥고 눅눅하며 환기도 잘 안 된다. 불이 나면 대형 재난으로 이어질 만한 환경이다. 이곳에서 사는 한 바링허우 여성은 지은이에게 “가능하면 이런 곳에선 살지 마세요. 오래 살다간 병이 안 날 수가 없거든요”라고 웃으며 말한다. 정부 통계론 16만명, 언론에선 100만명가량이 이런 곳에서 산다고 추정한다.
이 책에선 바링허우 세대를 다루지만 그들의 평균 소득이나 취업률, 혼인연령 같은 기본적인 통계는 나오지 않는다. 공개된 것이 없는지 작가가 인용하지 않은 것인지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중국인민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 문학원에 재직하는 지은이는 대신 이 책에서 바링허우 세대 작가의 문학을 분석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가 본 바링허우 세대 작가들은 같은 세대의 현실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상류문화에 대한 동경심을 자극해 자신의 책을 파는 데 열중할 뿐이다. 1983년생 유명 작가 궈징밍의 작품 <소시대>(小時代)는 상하이를 무대로 친구인 여성 네 명이 등장하는 소설로, 고가의 아파트와 명품 등으로 점철된 상류층의 삶을 동경하는 여성 심리를 묘사했다. 그는 “궈징밍으로 대표되는 바링허우들은 거대한 역사를 소시대로 바꿔 작고 귀여운 대상으로 만든다”고 꼬집는다. 바링허우 작가의 대표주자인 한한에 대해선 “겉으로는 체제의 불공정에 반대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체제를 희롱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지은이는 책에서 또래 작가들을 신랄하게 비판하지만 바링허우의 삶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정부에 과녁을 겨누지는 않는다. 중국 정부가 출판사 대부분을 운영하고 있고, 이 책도 베이징집단출판공사에서 나왔다는 점을 미루어 짐작건대 애초 그런 시도가 어렵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국내에 출판된 책 중에선 처음으로 바링허우 세대를 정면으로 다룬 이 책에서, 그 세대의 현실은 저자 자신의 경험과 그가 대신 전하는 짧은 만남에서 언뜻 윤곽만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중국 사회문제에 대한 전반적이고 정확한 그림을 얻기엔 아직 그곳의 출판·언론의 자유가 충분치 않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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