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독서
애슐리 몬터규 지음, 최로미 옮김/글항아리·2만8000원 20세기 가장 ‘감각적인’ 인류학자 애슐리 몬터규(1905~99)의 책 <터칭>이 국내에 처음 번역 출간됐다. <터칭>은 가장 크고 넓은 감각기관인 피부를 통한 접촉이 정신과 행동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밝힌 역작으로 꼽힌다. 몬터규에 따르면 피부는 64만개의 감각수용기가 포진한 매체이자 체내 보호, 체온 조절, 호흡 보조 등 역할을 하는 물리적 기관일 뿐 아니라, 무엇보다 사랑을 존속시키는 정신의 기관이다. 사랑을 받아본 사람이 사랑을 할 줄도 안다는 게 핵심. 이때 사랑은 만지고, 쓰다듬고, 껴안는 체감을 수반한 ‘행동하는 애정’이다. 그는 동양과 서양, 대륙권과 해양권, ‘문명권’과 ‘비문명권’, 여성과 남성, 계층 간 스킨십 문화를 비교하면서 사회적으로 학습되는 촉각 경험에 따라 인간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620쪽(번역본 기준)에 걸쳐 제시한다. 촉각에서 인간애가 싹튼다고 주장한 몬터규는 미각·후각·촉각 같은 ‘근접 감각’을 이탈해 시각·청각 같은 ‘원격 감각’에 길들여지는 세계를 우려했다. 인간애, 곧 “마땅이 익혀야 하는 친절”은 온기를 직접 주고받는 접촉의 순간에 생기기 때문이다. 청각과 시각을 주로 사용하는 디지털 시대에 ‘촉각의 발견’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외부와 ‘나’의 경계면인 피부의 의미를 주목한 ‘남성, 백인, 영국 출신 미국 학자’인 그는 인종 차별에 반대하고 어린이 인권 향상을 주창했다. <여성의 자연적 우월성>(1953)을 펴낸 페미니스트이기도 하다. 다만 그가 접촉 결핍을 동성애란 ‘문제’의 원인일 수도 있다고 보는 점은 문제적이다. 동성애가 정신질환이 아니라는 것은 1974년 이래 미국 정신의학회의 공식 입장이다. 초판(1971)은 그 전에 나왔다는 점을 이해하더라도, 제3판(1986년)까지 같은 입장을 견지한 것은 의아한 대목이다.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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