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버러 스미스가 번역한 <채식주의자> 영문판 <더 베지테리언> 표지.
번역자 데버러 스미스가 번역한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 영문판이 “원작을 성형수술한 것 같은 느낌”이라는 강도 높은 비판이 학계에서 나왔다. 김번 한림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최근 발간된 학술지 <영미문학연구>에 실은 논문 ‘채식주의자와 더 베지테리언(The Vegetarian): 원작과 번역의 경계’에서 “역자의 한국어 이해력이 이 번역을 감당하기에는 태부족”이라며 이렇게 지적했다.
그는 스미스의 번역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논문들이 “명백한 오역까지도 번역 전략에 따른 재량이나 선택의 문제로 간주한다”고 비판했다. 이 번역의 문제점을 다룬 인터넷 글이나 논문들도 “문제의 심각성에 옹골차게 대응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그중 한 갈래는 번역상의 몇몇 문제 사례를 짚으면서도 그것을 한국 문학의 세계 시장 진출이라는 대의(?)에 따른 번역 전략의 차원에서 다루는 경향을 보였다”고 해석했다.
김 교수는 오역의 사례로 처형 인혜를 처남 영호로 착각한다든지, 영혜의 형부를 전남편으로 바꾼 대목 등을 들면서 특히 인혜의 남편, 즉 영혜의 형부를 역자가 부정적으로 그렸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스미스는 형부와 영혜의 비디오 작업에서 ‘그로테스크한’이라는 표현을 ‘외설적인’(obscene)으로 옮겼는데, 김 교수는 이것이 이미 영어 표현으로 쓰인 단어를 굳이 다른 단어로 옮긴 것이 “무슨 청개구리 심보인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3부의 번역은 “파행적”이라고 비판한다. 김 교수는 스미스가 임의로 첨가하거나 자의적으로 삭제한 부분이 1부는 3곳, 2부는 11곳, 3부는 33곳에 이른다고 짚었다. 그는 “아마존의 독자 후기를 살펴보면 이해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꽤 많고, 특히 2부 중반을 넘어 결말을 향해 나아가면서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불만이 두드러진다”며 그 이유로 이런 자의적인 삭제와 첨가를 들었다. 김 교수는 아마존 독자 후기의 43%가 “이 인물들은 뭘 말하고자 하는가”라는 등의 불만을 제기하는 내용의 후기라는 점을 들어 “스미스가 자국화 전략에 따라 영어권 독서 대중에게 친숙한 번역을 제공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는 식의 변명 또는 옹호는 무력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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