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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파트라슈와 함께 걸어온 길들

등록 2017-07-20 18:53수정 2017-07-20 20:31

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플랜더스의 개
위더 지음·하이럼 반즈 그림, 노은정 옮김/비룡소(2004)

동시대를 살았다는 건 ‘말괄량이 삐삐’나 ‘플란더스의 개’의 주제가를 함께 흥얼거릴 수 있다는 게 아닐까. 그러기에 가수 이승환은 ‘플란다스의 개’라는 노래를 만들었고, 봉준호 감독은 ‘플란다스의 개’를 영화제목으로 쓰지 않았을까.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으로 익숙한 <플랜더스의 개>를 읽으며 세상에는 현실 속의 공간과 작품 속의 공간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현실보다 작품 속 공간이 더 생생할지 모른다. 주인공이 그 곳에서 어떤 꿈을 꾸었고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워했고 좌절했는지를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독자인 내가 넬로 그리고 파트라슈와 함께 울고 웃었으니까 말이다.

예한 다스 할아버지는 딸이 남긴 어린 손자 넬로 그리고 파트라슈와 같이 산다. 할아버지와 넬로의 누추한 오두막 앞에는 푸른 들판이 펼쳐져 있었고, 저 멀리 안트베르펜 대성당의 뽀족탑이 보인다. 파트라슈는 끔직한 학대에 시달리다 버려진 개였으나 두 사람의 지극한 정성으로 건강을 되찾았다. 크나큰 사랑에 감동한 파트라슈는 숨이 다할 때까지 두 사람을 위해 살리라 마음먹는다.

찢어지게 가난해 굶을 때도 많지만, 파트라슈는 우유통을 실은 작은 수레를 끌고 다니며 넬로와 깊은 우정을 나눈다. 다만 넬로에게는 이루기 어려운 소망이 하나 있다. 안트베르펜 대성당에 있는 루벤스의 제단화를 보는 것이다. 돈을 내야만 볼 수 있기에 넬로에게는 요원한 일이다. 하지만 루벤스의 그림을 보고 싶은 마음, 그처럼 위대한 화가가 되고 싶은 꿈은 쉽사리 꺼지지 않는다. 그러나 마을의 코제씨가 심술을 부리는 통에 넬로는 먹고 살 길이 막히고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신다. 미술대회에 입선하면 모든 게 달라질 거라고 희망하지만, 돈 많은 부두관리인의 아들이 입상하며 넬로는 모든 걸 잃는다.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추위와 배고픔으로 정신이 혼미해진 넬로는 달빛이 성당 안을 비추자 그림을 가린 천을 거둔다. 루벤스의 그림을 보고 큰 소리로 외친다. “마침내 그림을 봤어! 오, 하느님! 이제 됐습니다!”

어른이 되어 동화를 읽는 기쁨은 무엇일까. <플랜더스의 개>는 이 질문에 답하는 책이다. <플랜더스의 개>는 “파트라슈와 함께 걸었네”를 따라 부르며 어린 시절을 만나는 일이자 군더더기 없이 단순하고 명료하게 삶의 본질을 만나는 길이다. 사람은 때가 되면 어른의 시간을 되돌아본다. 그동안 마음에 품은 소망이 왜 없겠는가. 잘하고 싶어서 조바심을 냈던 시간들이 있다.

하지만 어쩌랴. 소년의 꿈이란 이루기 어려운 것을. 그렇다고 그 길이 헛된 건 아니다.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아직 어리지만 넬로의 “하느님! 이제 됐습니다!”는 이런 뜻이 아니겠는가. 동화를 읽고 나니 몹시도 안트베르펜에 가고 싶어졌다. 초등 5학년부터.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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