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동사의 맛>(유유)의 원작자 김정선(왼쪽) 작가와 만화를 그린 김영화 작가가 10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함께 나란히 섰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기독교 만화책을 내신 분인데, 불륜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도 괜찮겠어요?”
지난 10일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김정선(52) 작가는 지난해 자신의 책 <동사의 맛>(유유)을 만화로 그리고 싶다는 김영화(32) 작가를 만난 자리에서 노파심에 이렇게 물었다면서 껄껄 웃었다. 김정선 작가는 “생긴 것도 ‘교회 오빠’답게 키 크고 잘생겼는데, 하나님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을 꼬여서 불륜 만화를 그리게 하는 거 아닌가 걱정이 됐다”고 말하자, 김영화 작가도 웃음을 터뜨렸다.
김영화 작가는 대학 시절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재즈기타에 빠져 실용음악과로 다시 진학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랬던 28살의 그에게 친구가 ‘기독교 만화를 같이 그려보지 않겠냐’고 제안해왔다. 그렇게 2015년 <마태복음 뒷조사>(새물결플러스)를 기독교 웹툰 사이트 ‘에끌툰’에 연재한 뒤 책으로만 7천부가 팔리는 등 기독교계에서 뜨거운 반응을 일으켰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다’는 수구적인 성서 해석과는 거리를 두고, 두껍고 어려운 신학 서적에 담긴 신학계의 새로운 연구 성과를 만화로 쉽게 녹여냈기 때문이다. 김영화 작가는 “저는 신학생도 아니고 신학 서적도 읽은 적이 없는 상태에서 1년 사이에 자료조사와 연재를 마치려니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서 ‘만화를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마저 했어요”라고 말했다.
<동사의 맛>을 만화로 그리는 작업은 전작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였다. 김영화 작가는 “소설을 만화로 그리는 작업을 하려고 서점에 갔어요. 처음 이 책 제목을 봤을 때는 ‘얼어 죽는다’라는 뜻의 ‘동사’인 줄 알고 이상하다는 생각에 책을 뽑아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머릿속에서 만화 컷으로 분할돼서 전개되더라고요. 이 작품을 만화로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2015년 나온 김정선 작가의 <동사의 맛>은 동사의 뜻과 활용형을 설명하면서 예문들을 화자가 풀어놓는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로 만든 ‘사전소설’이란 새로운 형식을 시도해, 7쇄까지 찍는 등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후에 문장 다듬기 방법론과 소설을 합친 비슷한 형식의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와 소설의 첫 문장과 단상을 적은 <소설의 첫 문장: 다시 사는 삶을 위하여>를 출간해 출판계에서 ‘좋은 저자가 나왔다’는 평이 나왔다.
김영화 작가는 그길로 만화를 몇점 그려 출판사에 보내며 출간을 제안했다. 만화를 전달받은 김정선 작가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화자인 김정선 작가를 여자로 그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저는 처음에 김 작가가 제 책을 읽고 남자보다 여자가 좋겠다고 재해석해서 그린 건 줄 알았는데 정말 화자가 여자인 걸로 착각했더라고요”라며 “김 작가처럼 많은 사람이 저를 여자일 거라 생각해요. 이름도 중성적인데다가, 외주 교정일을 하는 사람이 남자일 거라고는 생각을 못 한 거죠”라고 말했다. 그는 책에서 “나는 그저 이야기를 빌려주었을 뿐 이건 온전히 만화가의 작품이다. 그러니 나를 여성으로 그렸든 아이로 그렸든 그건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선택 사항일 뿐”이라고 썼다. 김영화 작가는 “글에서 느껴지는 감수성으로 남자일 거라고는 추호도 생각을 못했다”고 말을 보탰다.
김정선 작가는 “김 작가가 보내온 예시 만화를 봤을 때 선이 둥글둥글하니 느린 제 이야기의 속도에 맞게 잘 그려주실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과물도 원래 제 책보다 더 좋습니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젊은 세대들에게 고전을 읽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무리죠. 세계문학은 매 시대마다 최전선에 있는 한글로 새로 번역해야 해요. 이처럼 다양한 장르를 만화로 소개하는 것도 그 시대에 필요한 새 ‘번역’ 작업이라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만화로 옮길 때 가장 어려운 점은 스토리를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김영화 작가는 “책에서 듬성듬성 이어지는 이야기를 어떻게 하나로 꿰느냐가 어려웠다”며 “그림을 모두 그린 뒤에 벽에 붙여놓고 ‘이걸 어떤 순서로 배열할까’를 고민한 마지막 단계가 제일 어려웠다”고 말했다. 출판사에선 인세를 7 대 3으로 김영화 작가에게 더 많이 준다.
이야기는 유명 작가의 웹툰에도 비문과 오타가 난무하는 등 글을 홀대하는 만화계의 현실로 이어졌다. 김영화 작가는 “언젠가 만난 중학교 1학년 학생이 ‘막장’인 내용의 웹툰을 보면서 자기 ‘인생 웹툰’이라고 하더라고요. 많은 웹툰이 글엔 신경을 안 쓰고 한병철의 말처럼 ‘포르노 사회’라고 할 정도로 이 세대가 바라는 자극적인 이미지만 좇아가는 것 같아 아쉬워요. 하지만 느린 것들, 감수성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글과 그림을 쓰고 그리는 게 멀리 보면 독자나 작가 모두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후속작을 묻자 김정선 작가는 “지금은 쓰고 싶은 책은 다 쓴 상태다. 일단 원래 하던 교정일에 집중하려 한다”고 말했다. 김영화 작가는 <누가복음 뒷조사>를 올해 말부터 1년 정도 연재한다. ‘지식 만화’에 관심이 많은 그는 “세계문학을 단편으로 그리겠다는 생각을 늘 해왔다. 최근엔 오규원 시인의 <현대시작법>(문학과지성사)을 읽고 ‘만화로 그리면 아주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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