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독서
록산 게이 지음, 김선형 옮김/사이행성·1만5000원 “남자들이 있었다. 언제나 어떤 남자들이 있었다.” 사귀거나 동료이거나 모르는 사람인데 잠깐 가까웠던 사이거나 잘못된 욕망의 대상이 되거나, 현대 남녀 사이에는 다양한 관계가 있다. 여성들의 다양한 경험이 쌓여간다. <어려운 여자들>에서는 주로 여성이 누군가와 몸과 마음의 내밀한 교감을 할 때 일어나는 상황을 관찰한다. 특히 욕망을 관철시키거나 수용할 때 느끼는 연민, 냉소, 불안, 희열 등을 촘촘하게 묘사한다. 21개의 단편소설로 이뤄진 책은, 여성이 내몰린 현대 사회의 중첩된 모순을 그대로 드러내 독자에게 선택할 것을 질문한다. 한 여성은 자연다큐멘터리를 볼 때마다 새끼를 열심히 돌보는 어미처럼 충실하게 양육을 할 수 있는지 되묻는다. 딸에게 ‘남편이 아무리 역한 짓거리를 원해도 들어줘야 잘 산다’는 조언을 하는 엄마가, 알고 보면 결혼생활 10년 만에 이혼을 했다는 다음 문장은 여러 의미가 있다. 남성이 여성의 마음을 얻기 위해 하는 살가운 행동을 두고, ‘하찮은 행위’라고 심드렁하게 품평하는 화자의 목소리를 발견한다면 읽으면서 웃음이 날 수도 있다. 젊은 여성을 탐하던 손으로 자신의 아들과 딸의 등을 두드리며 멋진 미래를 설교하는 남성의 위선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이 늘 문제”인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를 질문하게 된다. 이 책의 저자는 지난해 출간된 <나쁜 페미니스트>를 쓴 록산 게이다. 미국 사회를 써서 한국 사회와는 다른 배경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페미니즘이 그렇듯, 한국 독자가 공감하기는 어렵지 않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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