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조심하지 않으면 앞으로 역사상 가장 불평등한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
13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에서 김영사의 초청으로 방한한 유발 하라리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교수(역사학)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그의 전작 <사피엔스>는 세계 500만부, 한국 39만부가 팔렸고, 지난 5월 한국에서 출간된 <호모 데우스>도 현재까지 9만부가 팔리며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사피엔스>는 영장류가 어떻게 세계의 정복자가 될 수 있었는가를, <호모 데우스>는 세계의 정복자가 된 인류가 어떻게 신이 될 것인가를 다룬 ‘빅히스토리’ 책이다.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인간의 행위가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지 못해 생태계가 붕괴할 위기를 맞았다. 이처럼 21세기에도 우리가 얻은 새로운 힘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른다. 인공지능은 수십억의 사람을 직장에서 내쫓아 전혀 쓸모가 없는 거대한 계급을 창조하고, 독재정권의 출현을 더 쉽게 해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4차 산업혁명이 실체 없는 자본주의의 선전도구가 아닌가’라는 질문엔 “4차 산업혁명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이 합쳐져 경제 체제가 완전히 바뀌어 20~30년 안에 모든 경제 영역에서 혁명적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반박했다. 그는 “19세기 산업혁명에 뒤처진 중국, 인도, 한국 같은 국가들은 산업혁명을 먼저 따라간 영국, 프랑스, 일본 같은 소수 강대국의 침략을 받았다. 19세기에 일어난 엄청난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고, 정부가 이에 대한 대처를 위해 어떻게 준비하는가는 매우 중요하다”고 경고했다.
동시에 그는 “4차 산업혁명을 소수 자본주의 엘리트들이 전적으로 통제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그는 “20세기 초반 유럽과 일본 등 제국주의 국가들이 대규모 복지, 의료, 교육 시스템을 만든 것은 수백만의 병사와 노동자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1세기엔 병사와 노동자들이 로봇이나 드론으로 대체되고 있다. 앞으로 엘리트들은 수백만 대중을 위한 의료나 복지에 투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4차 산업혁명으로 양산될 실업자들을 위해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문제를 두고선 회의적 견해를 나타냈다. 그는 인공지능과 자동화 알고리즘으로 선진국들은 더욱 부유해지는 반면, 값싼 노동력에 의지하는 방글라데시 같은 국가는 큰 타격을 받는 글로벌 불평등이 심해질 수 있고, 이를 기본소득으론 해결할 수 없다고 봤다. 그는 “핀란드 국민이 자국민의 기본소득을 위해서 세금을 더 걷는 데는 동의할지 모르지만, 방글라데시 국민까지 돕는 데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교육 문제를 두고 “아이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가장 큰 기술은 혼돈의 상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이다. 구체적인 정보나 기술을 가르치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정신적 균형이나 유연성을 기르는 데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세계적 명상 지도자) 고엔카에게서 배운 ‘위파사나’로 얻는 집중력과 정신적 균형이 없었다면 앞의 책들을 쓸 수 없었을 것”이라며 하루 2시간씩 명상을 하고, 매년 두 달씩 안거를 한다고 밝혔다.
‘당신이 전지구적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실제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일원화된 지배구조를 합리화하기 위한 구실이 될 수 있지 않나’라는 기자의 질문에는 “나는 인류에게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지구적인 협력이 필요하다고 수없이 말해왔지만, 이런 대화가 강대국에 의해 악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민족주의도 제국주의만큼 위험할 수 있다. 우리는 두 위험 사이로 난 통로를 찾아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에 관한 질문은 이스라엘인으로서 까다로울 수 있는 문제임에도 답을 피하지 않았다. “이 갈등의 근본 원인은 사람들이 허구적인 이야기를 믿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이 유대인들의 영원한 수도’이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나눌 수 없다고 하는데 이는 완전히 허튼소리다. 과학자들은 유대인의 역사는 300년밖에 되지 않았고, 호모 사피엔스는 200년 후에는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팔레스타인인이 믿는 것도 똑같이 근거 없는 환상이다.”
그는 자신의 앞의 두 책이 각각 과거와 미래에 관한 책이라고 한다면 다음 책은 “현재에 관한 책”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의 출간 계획도 밝혔다.
하라리의 방한에 즈음해 그의 전공인 유럽 중세전쟁사에 관한 책 <극한의 경험>(옥당)도 출간됐다. 2008년에 나온 이 책은 중세부터 근대까지 전쟁 참가자들의 경험담을 분석했는데, 중세에선 전쟁에서 신의 뜻을 읽어내는 데 관심이 있었으나, 근대에 들어선 인간에 관한 심오한 진실을 발견하는 장으로 인식해왔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논지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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