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
피터 갤리슨 지음, 김재영·이희은 옮김/동아시아·2만5000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너무 추상적이어서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사실 그 이론은 우리 일상의 시간 시계들에 파고들어와 있다. 스마트폰이나 내비게이션, 그리고 시간을 서로 맞춰야 하는 기계장치들의 시간은 지피에스(GPS) 위성이 뿌려주는 시간 신호를 따른다. 그런데 위성과 지상의 시간은 다른 좌표계를 이루어 다르게 흐른다. 위성이 시속 2000㎞로 회전한다면 위성 시계는 지상 시계에 비해 날마다 100만분의 7초씩 느려지고, 위성이 1만7600㎞ 고도의 우주에서 돌고 있다면 약한 중력 때문에 위성 시계는 지상 시계보다 매일 100만분의 45초씩 빨라진다. 다행히 이런 오차를 교정할 수 있는 건 상대성이론 덕분이다.
뉴턴 물리학의 절대시간을 버리고 새로운 시간 개념을 제안한 아인슈타인의 1905년 상대성이론 논문은 세상을 뒤바꾼 업적으로 꼽힌다. 단지 물리 이론만 바꾼 게 아니라 철학적인 절대성을 무너뜨리면서 여러 영역에서 새 시대의 태동을 알리는 상징이 됐다. 추상적 이론의 혁명을 이룬 위인답게 아인슈타인은 세상과 동떨어진 물리학이나 수학 문제와 씨름하는 ‘외로운 등대지기’ 같은 과학자로 그려져 왔다.
전기 신호를 통해 지역 시계들에 동시성을 구현하려는 시도가 20세기 초에 이어졌다. 위쪽 그림은 1905년 무렵 스위스 베른시 전역에 설치된 좌표화된 전기 시계들의 모습으로, 당시엔 현대적인 도시 경관으로 강조되었다. 아래 그림은 중앙의 마스터 시계가 전기 시간을 종속 시계들에 분배해주는 구조를 보여주는 어느 특허출원 도면. 동아시아 제공
저명한 과학기술사학자인 피터 갤리슨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다른 시선을 제안한다. 그는 <아인슈타인의 시계, 푸앵카레의 지도>에서 아인슈타인의 흔한 이미지는 ‘교차로’의 한쪽 길에서만 바라본 것이라며 스위스 베른 특허국의 심사관으로 살았던 그의 직업 생활이 어떻게 ‘시간의 혁명’에 닿아 있는지를 추적해 보여준다. 상대성이론과 시간 혁명은 추상을 즐기는 고독한 이론가한테서 나온 게 아니라 세계 지도에 시간을 좌표화한 ‘제국의 시대’에 살았던, 그리고 물리 이론의 호기심을 놓지 않았던 특허심사관 아인슈타인한테서 나온 것이었다.
책의 목적은 ‘1905년 논문’에서 추상적인 이론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세상이 혼합된 역사를 온전히 읽어내자는 데 있는 듯하다. 지은이는 이를 ‘시계’와 ‘지도’라는 열쇳말을 끌어들여 보여준다. 시계나 지도 같은 물질성의 역사를 자연스럽게 끌어들여 추상적 이론의 역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은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지은이는 제국의 지도자들, 물리학자, 천문학자, 엔지니어, 철도·전신 기술자, 그리고 인간 아닌 기계들과 해저 케이블 같은 설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시간 혁명’을 예비하고 이끌며 마무리한 구석구석의 순간들을 대서사로 엮어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는 이미 뉴턴의 절대공간과 절대시간이 지배할 만한 시대는 아니었다. 제국들은 각축하며 본초자오선과 세계 시간의 표준을 정하고, 세계 지도의 경도를 확정하고자 시간 동시성 측정의 문제와 싸워야 했으며 철도·전신이 확장하던 시기에 지역 시계들을 통일해 맞추는 일은 중요한 과업이 되었다. 대체 시간이란 무엇인가? 시계들을 좌표화하는 일은 기술적인 문제이며, 철학적인 문제이며, 또한 물리학적인 문제였다. 혼합된 ‘교차로’이자 ‘교역지대’에서 벌어지는 일이었다.
스위스 제네바의 투르드릴 시계탑에 있는 세 개의 시계들(1880년께). 시간 통일 이전에 이 시계탑은 서로 다른 지역의 다른 시간들을 알려주었다. 1894년 이후 이 시계탑엔 한 개의 시계만이 설치됐다. 동아시아 제공
아인슈타인에 앞서 절대시간은 흔들리고 있었다. 저명한 프랑스 과학자 앙리 푸앵카레는 시간을 ‘규약’으로 이해하고 다루려는 인식을 보여주었다. 그런 인식은 철학자이자 수학자의 생활에서 저 혼자 나온 게 아니었다. 지은이는 푸앵카레가 한때 프랑스 제국 경도국의 주요 인사로서 전기 신호를 주고받으며 경도를 측정하고 시계를 좌표화하는 작업을 벌였음을 보여주면서, 이런 직무 경험들이 ‘시간과 동시성은 규약의 문제’라는 인식의 밑바탕이 되었다고 강조한다.
절대시간의 종언을 알린 이는 아인슈타인이었다. 무엇이 ‘기준’ 좌표계이냐에 따라 시간이 달라짐을 보여준 상대론의 시간 개념은 각지 시계들이 맞춰야 할 그런 절대시계는 존재하지 않음을 입증한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은 푸앵카레가 멈춘 곳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에테르’라는 보이지 않는 물질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는 물리학의 잘못된 가설 원리와 결별하고서, 움직이는 좌표계에서 시간과 동시성이란 대체 무엇인지를 치밀하게 물으며 답을 찾으려 한 데에 그의 시간 혁명이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특허심사관 아인슈타인의 직업 생활도 큰 몫을 했다. 지은이는 그의 출근길에 있던 시계탑의 동기화된 시계들, 일상적인 평가 대상이던 특허출원 시간 기계들, 심사관의 고유한 직업 스타일까지 그의 1905년 논문과 동떨어져 있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책은 물리학, 기술, 철학을 가로지르고 추상과 구체를 오르내리며, 격변의 시대에 ‘교차로’에서 이룬 혼합 또는 교차의 모습을 통해 평면적으로 이해될 법한 과학이론의 역사를 다면적으로 보여준다.
오철우 선임기자
cheolwo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