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 키냐르 지음, 김유진 옮김/프란츠·1만7800원 매혹적인 문장으로 국내 팬들의 사랑을 받는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의 음악 에세이. 시와 소설, 동서양의 철학과 신화를 넘나들며 겹겹이 밀려오는 아포리즘의 격랑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인다. 1948년 노르망디 주 베르뇌유쉬르아브르에서 태어난 키냐르는 말문을 닫았던 어린 시절을 거쳐 1969년 <말 더듬는 존재>로 데뷔했다. 첼로와 오르간을 익히며 자랐고 92년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음악 페스티벌까지 기획했을 정도로 소리예술에 조예가 깊은 문학인. <음악 혐오>(원제 ‘음악의 증오’, 1996)는 키냐르가 20년 넘게 몸담았던 갈리마르 출판사를 그만둔 94년부터 급성 폐출혈로 죽음의 문턱을 넘긴 96년 사이에 탄생했다.(옮긴이의 말, 김유진) “언어의 근원”을 강조해온 키냐르는 이 책에서도 음악과 소리의 근원을 들여다본다. 악기의 기원은 사냥용 ‘호각-덫’이었다. 피리는 새를 죽음으로 유인하는 인간의 무기였고, 활시위의 떨림은 최초의 노래이자 죽음의 노래가 되었다. “노래가 감동을 줄 때, 그것은 대상을 1) 꿰뚫고 2) 죽인다.” 소리는 강력하다. 청각에는 휴식이 없다. 귀는 눈처럼 속눈썹도, 눈꺼풀도 없기에 듣는 것은 순종적 행위가 된다. 수태된 직후부터 모든 사람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진동을 느끼고 리듬을 들었다고 키냐르는 말한다. “우리는 듣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는 돛대에 손발이 묶인 채 받침대 위에 서 있는 작은 오디세우스들이다. 어머니의 자궁 속 대양에서 길을 잃은 존재들인 것이다.” 고독한 첫울음은 태아가 세계로 갑자기 떨어져 나온 충격과 고통의 표현이며 비극의 출발인 셈. 수동적인 귀를 꿰뚫고 들어와 심장에 박히는 음악은 잔혹하다. 때론 집단에 정체성을 부여하고 국민을 예속시킨다.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음악은 인간의 육체와 영혼을 유린하는 데 가담했다. 바그너, 브람스, 슈베르트는 유혹하는 세이렌이었고 음악은 “죽음에 일조할 수 있었던 유일한 예술”로 쓰였다. 키냐르는 인류 근대사에서 “음악 고유의 근원적인 폭력성”이 극도로 발현되었음을 밝힌다. “음악의 본질은 불평등이다. 청취와 복종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음성으로 명령을 주고받는 부모와 아이, 서구와 비서구, 신과 피조물의 관계도 마찬가지 아닐까. 현대에 이르러 끊임없이 흐르는 음악은 소음과 구별할 수 없는 것, 혐오스러운 것이 되었다. 호메로스 서사시에 등장한 세이렌은 이제 끔찍하고 요란한 호출의 형태, 소방차와 경찰차와 앰뷸런스의 소리로 변화했다. 음악을 사랑하던 키냐르는 “언제 음악이 내게 떨어져 나갔는지 끝내 알지 못할 것”이라며 마침내 침묵을 염원한다. 황혼녘, 침묵의 시간을 그는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그것은 나에게, 홀로 있기를 바라는 모든 시간 가운데 가장 홀로이고자 하는 때다. 내가 죽고 싶은 시간이다.” 그는 자신의 죽음 뒤 화장 전후 어떤 때라도 노랫소리나 울음소리, 음악은 없을 것이라고 유언하듯 못 박았다. 키냐르의 문장은 파편적이면서 비밀스럽고, 끊어질 듯 이어진다. 철학의 깊이를 담은 단어들은 소리처럼 진동하면서 파문을 불러일으킨다. 기꺼이 물 수밖에 없는 미끼, 불가항력적으로 들을 도리밖에 없는 음악처럼 유혹적으로. 이 책은 지난봄부터 악보집과 음악교본을 발간해온 출판사 프란츠의 첫 단행본. 프랑스 파리 에콜 노르말 고등음악원과 베르사유 예술학교에서 바이올린을 공부한 김동연 대표는 “음악의 아름다움을 밝히는 책은 많지만, 음악의 본질을 다루며 섬세한 결을 펼치는 책은 드물다. 다소 생경하고 난해할지라도 곁에 두고 천천히 곱씹을 수 있는 책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책끈의 색깔까지 유념해 고른 것이 분명한, 품격 있는 책 디자인도 눈에 띈다. (※ <이것이 나의 도끼다>, 악스트 편집부 지음, 은행나무 참고)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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