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여성경제학회(IAFFE)는 1991년 창립한, 여성주의적 관점을 가진 경제학자들의 모임으로, 유일한 세계적 규모의 여성경제학 학회다. 지난 29일부터 1일까지 서울 성신여대에서 연 제26차 정기 학술대회의 주제는 ‘다극화 세계의 양성 불평등’으로, 2011년 중국 항저우에 이어 아시아에서 연 두번째 행사였다. 대회에 참석한 세계적 여성경제학자 조이스 제이컵슨과 줄리 넬슨을 30일 만났다. 인터뷰에는 한국인으론 처음으로 학회 이사 후보로 올라간 성효용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한국여성경제학회 전 회장)도 함께 자리했다.
세계여성경제학회 참석차 방한
‘사랑과 돈의 경제학’ 줄리 넬슨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큰 충격
성·인종 차별 문제 악영향 우려”
세계여성경제학회(IAFFE)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매사추세츠대학 보스턴 캠퍼스 줄리 넬슨 교수가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성북구 돈암동 성신여대 성신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줄리 넬슨 미국 매사추세츠대학 보스턴 캠퍼스 교수(경제학)는 수학과 추상이 장악해 기계처럼 작동하는 ‘남성경제학’에선 사람들의 인간관계와 가치가 배제됐다며 이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세계적인 여성경제학자다. 이런 주장을 담은 그의 저서인 <사랑과 돈의 경제학>(Economics for humans)은 한국에도 번역 출간됐다. 일본에서 이번 대회를 유치하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줄리 넬슨은 한국에서 행사가 열리도록 힘을 실어주었다고 한다.
넬슨 교수는 이번 학술대회에서, 지난달 25일 미국에서 출간된 <젠더와 위험감수>(Gender and Risk-Taking)의 주요 내용을 발표했다. “‘여성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기존의 35개 책·논문 등이 활용한 설문·실험조사 자료를 세밀히 분석해 보니, 실제론 남녀 간에 미미한 차이를 과장해 고정관념을 만들어온 것이란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이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에서 2014년 36.7%에 이르는 등 2000년 이래로 1위를 유지해온 점을 두고 “기업들은 인간의 삶에서 돌봄노동이 있다는 사실을 배제한 상태로 업무 공간을 설계한다”고 비판했다. 탄력적 시간근무제가 여성노동을 비정규직화, 유연화한다는 비판을 받지만 그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말했다. “계약직은 내 시간을 누군가에게 할애하고 싶을 때 일을 쉴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다”는 것이다.
한편 미국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두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의 당선이 성·인종 차별 문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 같다. 폭스뉴스와 브라이트바트닷컴 같은 우익 매체들이 일으킨 ‘거품’이 있었다고 본다.” 여성혐오 현상에 대해서는 “항상 있던 문제”라며 “‘여성은 항상 낮은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성이 뭔가를 더 잘하면 혐오하는 발언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 등으로 자본주의가 고도화될수록 일자리가 줄어드니 기본소득을 도입하자’는 주장엔 “아직 생각을 구체화하지 않았다”며 “좀더 많은 연구 결과가 나오면 결론을 내리고 싶다”고 말했다. “직업은 돈을 버는 수단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는 장이라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김지훈 기자
“남성 노동시간 줄여 양육하면 출산율 반등할 것”
조이스 제이컵슨 웨슬리언대 교수
“엔지니어링 분야 여성 태부족
양육·부모부양 나누는 것 필요”
세계여성경제학회(IAFFE)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웨슬리언 대학 조이스 제이콥슨 교수가 30일 오후 서울 성북구 돈암동 성신여대 성신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조이스 제이컵슨 미국 웨슬리언대학 교수(경제학)는 여성경제학의 ‘경전’으로 꼽히는 <젠더의 경제학>(The economics of gender, 미번역)의 저자로 여성경제학계를 대표하는 학자 중 한 명이다. 제이컵슨 교수는 2016년부터 세계여성경제학회 회장을 맡아오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아르헨티나 경제 관료인 실비아 베르헤르에게 자리를 넘겨줬다.
그는 남녀 임금 격차 문제에 대해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남성보다 높다고는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노동시장에서 많이 필요로 하는 엔지니어링이 아니라 인문학을 전공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남성 노동의 여성화’와 ‘여성 노동의 남성화’가 일어날수록 성 불평등 문제가 완화된다고 봤다. “남성의 노동시간을 줄여 자녀 양육과 부모 부양을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출산율도 반등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산업구조 변화로 계약직 노동이 늘어난 것도 긍정적 효과가 있다며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찍을 때처럼 프로젝트별로 일을 하면 노동자가 자녀 양육 시간을 자유롭게 운용하고, 한 회사에 묶여 있는 것보다 자신이 어떤 일을 할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본소득론엔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나는 기본소득을 선호하지 않는다. 기본소득은 산업 변화에 적응하려는 심리를 저해시켜 경제성장을 막는다”며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방법으론 벌어들인 수입만큼 정부가 지원금을 지급하는 ‘근로장려세제’(EITC)가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제이컵슨은 동료 연구자 3명과 함께 최근 다른 분야에서 도입을 시도하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을 여성경제학 연구에서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랜덤 포레스트’, ‘인공신경망’ 등 5가지 인공지능 학습 알고리즘이 연구자의 성정체성에서 오는 선입견을 배제하고 좀더 정확한 결과를 도출하게 될 것이라 기대했다. 그는 “미국의 인구통계 자료를 토대로 여성 노동자의 임금 변화를 추적했을 때 기존의 방법과 5가지 머신러닝 방법 모두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며 “그동안 경제학에서 사용한 기술이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해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가 많았던 반면, 빅데이터를 활용한 머신러닝으로 이런 한계를 탈피해 더 자유롭게 문제의 답을 찾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인터뷰 도움 강지예 성신여대 영어영문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