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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제대로 된 오페라 대본집 없어”…출판사 차린 음악매장

등록 2017-06-28 19:19수정 2017-06-28 21:02

‘오페라 총서’ 내는 박종호 풍월당 대표
작품 번역·해설 담은 첫 책 ‘아이다’ 출간

전문가 해설과 최고 수준 번역 원칙으로
매년 서너권씩 150권 내는 게 목표
브람스·슈만 등 평전 시리즈도 낼 것
‘풍월당 오페라 총서’의 첫 번째 책 <아이다>를 펴낸 박종호 풍월당 대표(앞줄 왼쪽)와 직원들이 2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풍월당 매장에서 인터뷰에 앞서 다함께 사진 취재를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풍월당 오페라 총서’의 첫 번째 책 <아이다>를 펴낸 박종호 풍월당 대표(앞줄 왼쪽)와 직원들이 2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 풍월당 매장에서 인터뷰에 앞서 다함께 사진 취재를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문화국가라면 최소한 관객들이 읽을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오페라 대본집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클래식 음악 매장이자 아카데미인 풍월당이 지난달 ‘오페라 총서’의 첫 권 <아이다>를 냈다. 풍월당 출판사에서 낸 첫 책이다. 박종호 풍월당 대표가 쓴 <아이다> 해설과 함께 번역가 이기철씨가 번역한 이탈리아어 대역 대사를 실었다. 극장용으로 한국어 대사만 실은 빨간색 작은 책도 별책 부록으로 함께 준다.

26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있는 풍월당에서 박종호(57) 대표를 만났다. 박 대표는 “외국 오페라 극장을 가면 관람객들이 보통 빨간색 표지로 싸여 있는 대본집을 들고 오는데 그게 너무나 부러웠다”며 “2003년 풍월당을 시작하면서 대본집을 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 됐다가 이제야 내게 됐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우리나라에선 오페라 대본이 출판된 적이 거의 없다. 공연장에선 누가 번역했는지도 모를 엉터리 대본을 나눠주거나, 이마저도 주지 않는 곳이 많다. 한국에서 오페라가 공연된 지 올해로 70년이 됐는데, 그렇게 70년이 흘러왔다”고 한탄했다. 실제로 이전에는 산발적으로 오페라 대본을 번역한 책이 출간되기도 했지만 종수도 제한적이었고 그나마도 절판돼 지금은 시중에 구할 만한 대본집이 없는 상황이다.

박 대표는 ‘오페라 총서’를 매년 서너 권씩 펴낼 예정이다. ‘풍월당이 망하지 않고 150편 이상을 내는 것’이 목표다. 올겨울에는 알반 베르크의 <보체크>를, 내년에는 바그너의 대작인 <반지>를 출간할 계획이다. 박 대표는 “전세계적으로 반복해서 상연되는 스탠더드 작품이 300개인데, 이 가운데 내가 쓴 3권짜리 <불멸의 오페라>에서 다룬 작품이 150편 돼서 이 정도로 목표를 잡았다”고 말했다. 박 대표만이 아닌 다양한 전문가들이 해설을 쓰고 최고 수준의 번역을 싣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풍월당은 이와 함께 작곡가 평전 시리즈도 올해부터 출간할 예정이다. 올가을엔 브람스, 내년엔 슈만 평전이 나온다,

정신과 전문의인 박 대표는 공연장을 찾아 수백 차례 유럽 여행을 할 정도로 클래식 애호가였다. 2003년 병원 일을 접고 음반 매장 풍월당을 열었다. 2007년 아카데미를 열어 강의를 시작했는데, 지금은 강의에 수백명이 참가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매년 2억원가량씩 적자를 보다가 아카데미 수강료 수익으로 3년 전부터 겨우 수백만원 수준의 흑자를 보고 있다. 박 대표는 “어떤 전 대통령 부인도 경호원을 대동하고 강의를 들으러 한동안 왔었다. 하지만 강의를 들으려는 게 아니라 그분을 만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더라. 부인께 나오지 말아 주십사 하는 뜻을 정중히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전문직인 의사에 상류층 문화로 받아들여지는 클래식 관련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는 점 때문에, 사회문제엔 담을 쌓고 예술만 탐닉하는 사람으로 오해를 받는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예술작품에서 나타난 장애인·유색인·성소수자 등 소외된 사람들을 다룬 자신의 최근 강의 내용을 토대로 <예술은 언제 슬퍼하는가>(민음사)라는 책을 내는 등 사회에 대한 관심을 놓치지 않아 왔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오페라가 생명력을 잃은 것도 사회 비판 의식이 없기 때문이라 지적했다. 베르디가 <아이다>에서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메시지를 담은 것을 살려, 유럽 오페라들은 극 중에 자유의 여신상이나 미사일을 등장시켜 미국의 제국주의를 비난하는 반미주의적 연출을 한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이집트에 끌려와 공주의 시녀가 된 에디오피아 공주 아이다를 통해 한국의 이주노동자 문제를 이야기 하는 것과 같은 연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유럽 오페라가 살아 있는 이유가 시대 비판적이기 때문”이라면서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는 ‘독재국가에선 공연하지 않는다’며 한번도 방한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지난 정부 때 한국의 유명 음악가들 중에 앞장서 이런 이야기를 한 사람이 있었는가”라고 물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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