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책방의 미래
북쿠오카 엮음, 권정애 옮김/펄북스·1만6000원
책의 소리를 들어라
다카세 쓰요시 지음, 백원근 옮김/책의학교·1만5000원
한 40대 여성이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물었다. “책을 자주 읽는 사람과 책을 거의 읽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쪽의 인생이 더 행복할까요? 전반적으로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더 낙천적이고 인생을 즐기는 느낌인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하루키는 이렇게 답했다. “설령 좀 불행하다 해도, 다른 사람에게 미움 좀 받는다 해도 책을 읽지 않는 것보다는 책을 읽는 인생이 훨씬 좋습니다. 그건 너무 당연한 이야기잖아요.”(<무라카미씨의 거처>(미번역) 중에서)
책이 안 팔리고 서점이 문을 닫는 ‘책의 위기’가 깊어갈수록 작가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어둠이 깊어질수록 ‘책장이’들의 분투도 빛을 발한다.
일본 후쿠오카의 유명한 북 페스티벌인 북쿠오카(북+후쿠오카)는 2006년 한 술자리 잡담에서 시작됐다. 후쿠오카시에서 일하는 서점 주인, 출판사 편집자, 인터넷 헌책방 관리자가 모여 이야기를 하다가 도쿄에서 하는 ‘한 상자 헌책방’을 이 지역에서도 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시민들이 상자 하나에 헌책을 담아 들고나와 파는 벼룩시장이었다. 첫날부터 성황을 이룬 것이 10년째 이어져 왔다. <책과 책방의 미래>는 2015년 북쿠오카 10주년을 맞아 출판인·서점인·도매상 12명이 모여 ‘책과 책방의 미래’를 주제로 무박 2일로 11시간 동안 연 ‘끝장 토론’을 담은 책이다. 이 중 6명은 후쿠오카 바깥 도쿄·오사카·히로시마에서 온 사람들이라 논의는 후쿠오카를 훌쩍 넘어선다.
북페스티벌 ‘북쿠오카’의 벼룩시장에서 한 참가자가 자신의 반려견과 함께 책을 팔고 있다. 펄북스 제공
일본에선 매년 300~1000개의 서점이 없어지고 있다. 2000년 2만여곳이던 서점이 2015년엔 1만3500곳으로 줄어들었다. 1996년 1조931억엔으로 최고점을 찍었던 단행본 전체 판매액은 2015년 7419억엔으로 32%나 감소했다. 도매상 직원 미즈이 도시오(38)는 “저는 서점이라는 장소에서 구원받았고 서점이라는 장소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라면서도 “담당한 서점에 수금을 위해 갔었는데 서점이 망해버렸습디다. 그때는 어찌나 눈물이 났던지…” 하고 슬퍼했다.
북쿠오카 같은 행사를 벌이자 ‘매출이 떨어지니 홍보에 나섰다’는 비아냥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책장이들은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책 읽는 것은 멋있는 일’이라는 유행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북쿠오카 기획자이자 북스큐브릭 서점 사장인 오이 미노루(56)는 말한다. “책 읽는 일이 지적이며 멋있다는 풍조를, 지방 도시라면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잡지 등에서 특집을 자꾸 하면 반응하는 사람도 나오지 않을까요.” 베스트셀러를 팔지 않는 독특한 서점을 운영하는 나카가와 가즈히코(57)는 ‘책 읽는 인생이 훨씬 좋다’고 당연한 듯 얘기했던 하루키의 말을 예로 들며 “그렇게 전달하는 노력에 우리는 너무나 태만했던 것 아닐까” 반성한다.
북쿠오카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펄북스 제공
책장이들 사이에서 유통에 대한 비판과 성찰도 이어졌다. ‘트랜스뷰 출판사’는 도매상을 끼지 않고 서점과 직거래를 하는 모험을 시도하는 곳. 도매상을 통하지 않는 직거래로 줄인 비용을 서점에 돌려주려고 70%이던 공급률(서점에 납품할 때의 도매가. 책의 정가 대비 비율)을 2% 낮추기도 했다. 이 출판사 대표상무인 구도 히데유키(45)는 독자와의 관계를 질문한다. “실제로 출판사에 돈을 지불해주는 건 도매상이고, 책의 진열은 서점이 해줍니다. 출판사는 고객이라고 생각했던 독자에 대해 과연 무엇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또 서점에는 몇 주일을 기다리게 해놓고도 ‘우리 책임이 아니에요’와 같은 태도를 보이지요.”
벽지에서는 서점이 쇠락해가는 마을 공동체의 구심점 노릇을 하기도 한다. 서점주 사토 도모노리(42)는 히로시마의 첩첩산중 마을에 1888년 만들어진 책방을 이어받았다. 지금도 마을 인구가 8천명밖에 되지 않지만 앞으로는 점점 더 줄어 곧 5천명이 될 전망이란다. 그의 서점에서는 책 말고도 문구, 음반, 담배, 화장품을 함께 판다. 동네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연하장 인쇄 서비스, 피부관리실, 미용실까지 운영한다. 아기를 데려온 고객은 책에 집중하도록 아기를 맡아주고, 아이들에게는 마술을 보여준다. 사토 대표는 “책은 마을 조성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존재”라며 “책을 파는 순간에 만족하지 않고, 책을 사고 책을 읽는 그 사이에 서점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일본 후쿠오카시 주오구 아카사카 지역의 ‘느티나무길’에 위치한 서점 앞에서 북페스티벌 ‘북쿠오카' 프로그램인 벼룩시장이 열렸다. 시민들이 한 상자 분량의 헌책을 가지고 나와 판매하는 ‘한 상자 헌책방’ 행사로 2006년부터 지금까지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펄북스 제공
‘책의 위기’ 시대를 맞아 작은 서점들이 택한 공통적인 생존방식은 ‘북큐레이션’이다. 고양이, 추리소설처럼 특정 주제의 책만 진열하거나 서점 주인이 좋아하는 책만 비치해놓는 방식을 말한다. 일본에선 아예 전문적으로 북큐레이션을 해주는 ‘북큐레이터’(북 디렉터)란 직업이 생겨났다. 논픽션 작가 다카세 쓰요시는 신간 <책의 소리를 들어라>에서 일본 최초의 북큐레이터 하바 요시타카(41)의 작업을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하바는 2005년 회사를 세워 서점, 도서관, 공항, 백화점, 미용실의 서가를 꾸며주는 북큐레이션을 시작했다. 2008년 도쿄 시부야 상점가에 있는 ‘시부야 퍼블리싱 & 북셀러즈’란 서점의 북큐레이션을 의뢰받은 그는 ‘연대란 무엇인가’라는 테마로 1940년부터 2000년까지 10년 단위로 나눈 책장을 만들었다. 1980년대에 활동한 이들이 쓴 책은 분야와 무관하게 1980년대에 놓는 방식으로 책을 진열한 것. 일반적인 서점의 책 진열 관행을 바꿔버린 셈이다. 그는 2014년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문을 연 여행책 도서관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 소장 도서 1만4700권 중 4천권을 선정해 꾸미는 작업을 맡기도 했다.
일본 첫 북큐레이터 하바 요시타카. 책의학교 제공
다카세 작가는 “먼지투성이로 어느 고서점 구석에 묻혀 있었을 법한 책이 하바에 의해 양지로 호출되어, 다시 생명의 빛을 발산한다”며 “생생하게 책이 되살아나 독자의 마음을 각성시키며, 정열에 점화를 할 만큼의 잠재적인 에너지를 담고 있다”고 말한다.
일본에선 북쿠오카와 북큐레이션 같은 ‘책장이’들의 도전이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고 있고, 한국에선 출판사·서점 대표들이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서울국제도서전을 일신해 역대 최다 관람객 20만을 달성했다. ‘책의 위기’라며 시대를 비관만 하기엔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점을 이들은 보여준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