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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하와이 원주민, 우리의 적의는 정당하다

등록 2017-06-08 19:38수정 2017-06-08 19:51

하와이 저항운동가·학자 트라스크
백인 패권주의와 인종차별 폭로
“하올레와 관광객은 필요없다”
하와이 원주민의 딸
하우나니-카이 트라스크 지음, 이일규 옮김/서해문집·1만5000원

“미국 연방정부는 하와이 원주민의 자치정부 수립을 승인하라. 우리는 미국인이 아니라 하와이 원주민이다.”

하와이 왕국이 미국과 합병된 지 100년이 지난 지금도 자치·독립 정부를 세우려고 한다는 사실은 대다수 한국 사람에겐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하와이대 명예교수인 하우나니-카이 트라스크가 쓴 <하와이 원주민의 딸>은 하와이를 ‘휴양 천국’이 아닌 ‘미국의 식민지’라고 말하는 하와이 원주민의 목소리를 담은 접하기 힘든 책이다.

1778년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이 하와이에 처음으로 상륙하면서, ‘하올레’들과 함께 들어온 전염병으로 100만명으로 추정됐던 원주민은 4만명 이하로 줄어들었다. 하올레는 ‘백인 이방인’을 말하는 하와이 원주민 언어다. 미국인 하올레들은 기독교를 전파하고, 하와이 왕을 압박해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을 건설했다.

하우나니-카이 트라스크 하와이대 교수는 1991년 ‘하올레’(백인을 일컫는 하와이 말)라는 말이 인종차별적이라고 말한 백인 학생에게 “하와이에서 나가는 것은 어떤가”라고 대학신문에 공개편지를 썼다가 해임 요구에 부딪혔다. 이에 트라스크를 옹호하는 학생, 교직원, 원주민 300명이 학교에서 집회를 열었다. <호놀룰루 애드버타이저>의 찰스 오카무라가 찍은 이 사진은 미국과 일본, 태평양 지역 다수의 언론에 실렸다. 서해문집 제공
하우나니-카이 트라스크 하와이대 교수는 1991년 ‘하올레’(백인을 일컫는 하와이 말)라는 말이 인종차별적이라고 말한 백인 학생에게 “하와이에서 나가는 것은 어떤가”라고 대학신문에 공개편지를 썼다가 해임 요구에 부딪혔다. 이에 트라스크를 옹호하는 학생, 교직원, 원주민 300명이 학교에서 집회를 열었다. <호놀룰루 애드버타이저>의 찰스 오카무라가 찍은 이 사진은 미국과 일본, 태평양 지역 다수의 언론에 실렸다. 서해문집 제공
1875년 형의 아내를 몰아내고 왕이 된 칼라카우아는 미국 해병대가 자신의 집권을 도와준 대가로 일정 소득 이상의 사람들에게만 투표권을 주고 외국인에게도 참정권을 허용하는 헌법을 제정했다. 이로 인해 하올레에게 권력이 급격히 쏠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왕위에 오른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이 재산에 따른 투표 자격 요건을 철폐하고 왕국 국민에게만 투표를 허락하도록 민주적인 개헌을 하려고 하자, 하올레들은 미 해병대를 동원해 왕조를 전복하고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미 해병대가 궁전 앞에 진을 치자, 결국 여왕은 1893년 미국에 권한을 이양했고, 하와이는 1898년 미국에 합병됐다.

현재 하와이의 원주민들은 전체 인구의 20%밖에 되지 않는다. 이들은 높은 실업률과 낮은 교육 수준, 저임금으로 고통받는 ‘2등 국민’으로 전락했다. 훌라춤처럼 심원한 종교적 의미를 표현하는 하와이의 전통문화는 본래 의미를 잃은 채 관광객들의 구경거리가 됐다. 미군은 하와이를 핵잠수함이 드나드는 군사 전초기지로 삼았고, 섬들을 폭격훈련장으로 만들었다. 아름답고 깨끗하던 섬들은 리조트와 골프장 건설로 파헤쳐지고, 연간 700만명씩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더럽혀졌다. 미국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선 원주민 학생에게 ‘하와이 원주민은 식인종이었고 영아살해를 일삼았다’ ‘독재자 왕이 모든 토지를 소유하고 백성들은 봉건시대처럼 예속 상태에 있었다’고 가르쳤다.

1993년, 미국 해병대에 의해 하와이 왕조가 전복된 지 100년을 맞아 하와이 원주민 단체 ‘카 라후이’가 하와이 원주민의 주권 회복을 주장하는 행진을 주도했다. 미국 본토와 태평양제도에서 온 1만5천여명의 참가자들이 하와이 이올라니 궁전으로 향한 이 시위는 사상 최대 인원이 참가한 행진으로 기록됐다. 하우나니-카이 트라스크(앞줄 맨 오른쪽)와 그의 동생으로 변호사이자 원주민 운동의 지도자 밀릴라니 트라스크(앞줄 오른쪽 셋째)가 시위행진의 선두에 섰다. 사진 <호놀룰루 애드버타이저> 브루스 아사토. 서해문집 제공
1993년, 미국 해병대에 의해 하와이 왕조가 전복된 지 100년을 맞아 하와이 원주민 단체 ‘카 라후이’가 하와이 원주민의 주권 회복을 주장하는 행진을 주도했다. 미국 본토와 태평양제도에서 온 1만5천여명의 참가자들이 하와이 이올라니 궁전으로 향한 이 시위는 사상 최대 인원이 참가한 행진으로 기록됐다. 하우나니-카이 트라스크(앞줄 맨 오른쪽)와 그의 동생으로 변호사이자 원주민 운동의 지도자 밀릴라니 트라스크(앞줄 오른쪽 셋째)가 시위행진의 선두에 섰다. 사진 <호놀룰루 애드버타이저> 브루스 아사토. 서해문집 제공
트라스크는 그중에서도 하와이대학을 “주 공교육의 사령탑으로서 피라미드의 정점에 군림하며, 백인 지배를 옹호하는 식민지 시대 유물”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그런데 트라스크는 어떻게 하와이대에서 교수가 될 수 있었을까? 임용부터가 힘겨운 싸움이었다. 그는 학과회의에서 다수 교수의 지지를 얻어 하올레 여성을 제치고 조교수 임용 대상자로 결정됐지만, 학과장이자 인종차별주의자인 하올레 남성 교수의 반대로 4개월이나 채용이 연기됐다. 학생과 다른 학과 교수, 원주민들이 모임을 만들어 트라스크를 지원하고 나서야 대학은 마지못해 채용을 통보했다. 하올레 학과장은 하올레 남성 교수에겐 첫해부터 종신교수 자격 조건인 대학원 수업 기회를 줬지만, 트라스크에게는 그러지 않았다. 트라스크는 대학 안팎에 이 문제를 공론화시키는 투쟁 끝에 결국 하와이 연구센터의 초대 전임교수직을 얻어낼 수 있었다.

그 뒤에도 1991년 “‘하올레’라는 단어가 인종차별적”이라고 학생신문에 공개편지를 기고한 하올레 남학생에게 “하와이에서 나가는 것은 어떤가”라는 공개편지를 보냈다가 극심한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하올레 총장과 교수들은 그를 인종차별 혐의로 고발하고 교수직에서 내쫓으려 시도했다. 협박과 테러 위협에 시달렸지만 그는 학생, 원주민 단체의 도움으로 이겨냈다. 트라스크는 “원주민이 하올레에게 적의를 품는 권리만큼은 정당하다”고 응수했다.

하와이 원주민 운동가인 칼라니 오헬로가 “양키 고 홈”(미국은 꺼져라)이라고 쓴 펼침막 앞에서 주먹 쥔 손을 치켜들고 있다. 사진 에드 그리비. 서해문집 제공
하와이 원주민 운동가인 칼라니 오헬로가 “양키 고 홈”(미국은 꺼져라)이라고 쓴 펼침막 앞에서 주먹 쥔 손을 치켜들고 있다. 사진 에드 그리비. 서해문집 제공

트라스크는 이런 일련의 투쟁을 거치며 원주민 독립운동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원주민들과 함께 단체를 결성해 군사기지 같은 출입 금지 구역에 들어가는 ‘위법 시위’를 강행하고, 리조트를 건설하기 위해 원주민을 퇴거시키는 조치에 불응하는 점거활동을 벌이고, 관광객 상대 행사를 방해하는 공격적인 저항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하와이를 완전한 독립국이나 아메리칸인디언 자치구와 같은 ‘국가 안 국가’로 만들어 주권을 회복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

“관광객은 그만 왔으면 좋겠다. 우린 관광객을 원하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자결권을 요구하는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달라”는 이들의 외침을 한국인 독자들이 그냥 지나쳐버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식민통치를 받는 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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