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의 장르문학 읽기
하늘을 나는 말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정경진 옮김/한스미디어(2017) 언젠가 내가 사는 건물의 보안문 앞에 정체 모를 쪽지가 하나 붙었다. 남자로 보이는 발신인은 갑자기 연락도 되지 않고 모습을 감춘 수신인에 대한 걱정을 담아 연락 달라고 썼다. 한 층 아래의 보안문에도 같은 쪽지가 붙은 것으로 보아 주소도 정확히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수상하면서도 기묘한 메시지였다. 여자로 추정되는 수신인은 정말 별안간 연락 두절하고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발신인과 원치 않는 관계를 끊으려 하는 걸까? 갖가지 상상이 들었지만, 해답을 알 수는 없다. 건물의 경비원조차도 사정을 몰랐고. 시시티브이(CCTV)를 보고 수사해야 할 만큼 엄청난 사건도 아니었다. 같은 건물에 살았을 사람의 얼굴도 모르는 이웃들에게만 미스터리로 남았을 뿐이다. 일상 미스터리는 평범한 하루에서 일어나는 특별한 사건을 추적하는 추리소설이다. 살인 등의 잔혹한 일들이 벌어지지 않기에 타인의 비극에서 오락적 흥미를 느끼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독자에게는 안성맞춤인 장르이기도 하다. 기타무라 가오루의 <하늘을 나는 말>은 이 장르의 시초 격으로 꼽힌다. 주인공 ‘나’는 고전 예술과 소설에 흥미가 있는 여자 대학생이고, 그의 여러 취미 중 하나는 일본식 전통 만담이라고 할 라쿠고이다. <하늘을 나는 말>은 이런 내가 라쿠고를 연기하는 라쿠고가인 엔시 씨와 만나 일상의 법칙에서 어긋난 듯 보이는 사건 속에 숨겨진 다른 사람의 사정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꿈에서 본 인물이 그려진 그림, 홍차에 설탕을 너무 많이 집어넣는 소녀들, 열린 차에서 없어진 시트 커버, 동네에 나타난 빨간 모자, 하늘을 나는 목마. 이 사건들에 무슨 설명이 있을 수 있는가? 1989년에 발간된 이 소설이 3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서야 국내에서 발간된 것은 아무래도 일본 전통문화와 문학에 대한 언급이 많으므로 한국 독자와는 거리가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만큼 해당 분야에 취미가 있거나 문예적 교양이 녹아 있는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새삼 관심이 생길 소설이다. 무엇보다도 세월이 지났지만,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은 시간의 때를 타는 것이 아니기에 미스터리의 흥미는 그대로이다. 일상 미스터리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나는 본질적으로 세상에 미스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가 타인의 감정을 모르고, 동시에 나 자신의 감정도 숨기거나 모르기 때문이라고 믿어왔다. 불안, 복수심, 좌절, 조롱, 무엇보다도 애정. 그러니 이런 사건 해결의 핵심은 타인의 심사를 이해하는 것이다. 내게 미스터리였던 일들은 우리가 타인이기 때문에 영 알지 못할 남의 일상이었다. 다른 사람의 진짜 속마음을 알게 되는 건 가끔 무척 실망스럽기도 하다. 미스터리의 해결이 언제나 즐겁지만은 않고, 영 몰랐으면 싶은 감정들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으면, 마지막 엔시 씨의 말처럼 “어떻습니까, 인간이란 존재도 아주 가치가 없지만은 않지요?”라고 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나는 살면서 목격했지만 영원히 해답을 알지 못할 평범한 수수께끼들에 인간으로서 가치가 없지만은 않은 감정들이 스며 있기를 바랐다. 박현주 에세이스트, 번역가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정경진 옮김/한스미디어(2017) 언젠가 내가 사는 건물의 보안문 앞에 정체 모를 쪽지가 하나 붙었다. 남자로 보이는 발신인은 갑자기 연락도 되지 않고 모습을 감춘 수신인에 대한 걱정을 담아 연락 달라고 썼다. 한 층 아래의 보안문에도 같은 쪽지가 붙은 것으로 보아 주소도 정확히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수상하면서도 기묘한 메시지였다. 여자로 추정되는 수신인은 정말 별안간 연락 두절하고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발신인과 원치 않는 관계를 끊으려 하는 걸까? 갖가지 상상이 들었지만, 해답을 알 수는 없다. 건물의 경비원조차도 사정을 몰랐고. 시시티브이(CCTV)를 보고 수사해야 할 만큼 엄청난 사건도 아니었다. 같은 건물에 살았을 사람의 얼굴도 모르는 이웃들에게만 미스터리로 남았을 뿐이다. 일상 미스터리는 평범한 하루에서 일어나는 특별한 사건을 추적하는 추리소설이다. 살인 등의 잔혹한 일들이 벌어지지 않기에 타인의 비극에서 오락적 흥미를 느끼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독자에게는 안성맞춤인 장르이기도 하다. 기타무라 가오루의 <하늘을 나는 말>은 이 장르의 시초 격으로 꼽힌다. 주인공 ‘나’는 고전 예술과 소설에 흥미가 있는 여자 대학생이고, 그의 여러 취미 중 하나는 일본식 전통 만담이라고 할 라쿠고이다. <하늘을 나는 말>은 이런 내가 라쿠고를 연기하는 라쿠고가인 엔시 씨와 만나 일상의 법칙에서 어긋난 듯 보이는 사건 속에 숨겨진 다른 사람의 사정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꿈에서 본 인물이 그려진 그림, 홍차에 설탕을 너무 많이 집어넣는 소녀들, 열린 차에서 없어진 시트 커버, 동네에 나타난 빨간 모자, 하늘을 나는 목마. 이 사건들에 무슨 설명이 있을 수 있는가? 1989년에 발간된 이 소설이 3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서야 국내에서 발간된 것은 아무래도 일본 전통문화와 문학에 대한 언급이 많으므로 한국 독자와는 거리가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만큼 해당 분야에 취미가 있거나 문예적 교양이 녹아 있는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새삼 관심이 생길 소설이다. 무엇보다도 세월이 지났지만,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은 시간의 때를 타는 것이 아니기에 미스터리의 흥미는 그대로이다. 일상 미스터리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나는 본질적으로 세상에 미스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가 타인의 감정을 모르고, 동시에 나 자신의 감정도 숨기거나 모르기 때문이라고 믿어왔다. 불안, 복수심, 좌절, 조롱, 무엇보다도 애정. 그러니 이런 사건 해결의 핵심은 타인의 심사를 이해하는 것이다. 내게 미스터리였던 일들은 우리가 타인이기 때문에 영 알지 못할 남의 일상이었다. 다른 사람의 진짜 속마음을 알게 되는 건 가끔 무척 실망스럽기도 하다. 미스터리의 해결이 언제나 즐겁지만은 않고, 영 몰랐으면 싶은 감정들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으면, 마지막 엔시 씨의 말처럼 “어떻습니까, 인간이란 존재도 아주 가치가 없지만은 않지요?”라고 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나는 살면서 목격했지만 영원히 해답을 알지 못할 평범한 수수께끼들에 인간으로서 가치가 없지만은 않은 감정들이 스며 있기를 바랐다. 박현주 에세이스트, 번역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