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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정희진의 어떤 메모] 뒤섞임, 매개성(betweenness)

등록 2017-05-26 19:23수정 2017-05-26 19:44

[토요판] 정희진의 어떤 메모
<신장의 역사-유라시아의 교차로>, 제임스 A. 밀워드 지음, 김찬영·이광태 옮김, 사계절, 2013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 지금 상영 중인 김정(김소영)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다. 즐거운 음악영화이자 1970년대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일했던 여성 예술가의 이야기다. 극중에 노래가 끊어질까 조바심 날 만큼 아름다운 음악이 좋고, 비슷한 시대에 연년생 아이 셋을 낳고 교사 생활을 했던 내 어머니가 생각나는 영화다.

그런데 주인공 방 타마라의 “이건 영화가 아니라 저의 인생이자 고려인의 역사죠”라는 이야기나 “인터뷰를 하고 나니 책 한권 쓴 것 같네요”라는 말(<한겨레> 5월18일치)을 들으면 ‘20자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텍스트는 스펙터클하다. 영화의 ‘볼거리’는 세계사의 중심에 카메라를 댔다는 사실 그 자체에 있다. 그것은 탈식민 페미니즘 이론가이기도 한 여성 감독의 위치성에서 가능한 것이다.

대개 사람들은 옛 소련을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백인들의 나라로 알고 있다. 아시안게임에 왜 카자흐스탄이 나오냐는 이들도 있고, 그들의 종교가 러시아정교가 아니라 이슬람교라는 사실에 놀란다. 영화의 주인공은 한국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를 둔 고려인 3세다. ‘고려인’은 러시아를 비롯해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독립국가연합에 사는 ‘우리 동포’를 통칭한다. 1937년,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이주 정책’으로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했다.

지금 카자흐스탄이 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는 미국화, 자본주의화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며(방씨도 교회에 다닌다), 맥도날드가 성업 중이며 고려인 4세 젊은이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한류’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민족의 집산(集散)을 공부할 때 읽었던 <신장의 역사-유라시아의 교차로>를 다시 집었다. 4000년간 신장의 역사와 카자흐스탄 한인 3세의 만남. 두 텍스트는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는, 앎의 입문서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인문학은 언어의 역사다. 언어를 만들어온 ‘서구’, ‘민족’, ‘국가’ 개념 중심의 세계사는 패권주의를 떠나, 실제로는 얼마나 국지적인 지식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할리우드 영화는 별다른 설명 없이 내용에 진입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든 대니얼 벨이든 프랜시스 후쿠야마든 ‘바로’ 읽을 수 있다. 반면, 미국의 중앙아시아 연구자인 제임스 밀워드의 역작 <신장의 역사>는 제목만 설명하는 데도 몇 페이지가 필요하다. 방대한 내용은 당연하고, 관점도 좋다. “가장 적절한 입문서”. 내가 말할 수 있는 최선이다.

‘신장’(新彊, Xinjiang)은 중국 서북부에 위치한, 흔히 서역(西域)이라고 알려진 지역이다. ‘서역’은 중국의 관점에서 서쪽이고, ‘신장’은 18세기 청나라 건륭제가 그곳을 정복하고 새로운 땅이라는 의미로 붙인 이름이다. 둘 다 문제적인 개념이므로, 고대와 중세 시대까지 이란계와 튀르크계가 거주하며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어왔다는 의미에서 ‘동(東)투르키스탄’이 옳다. 하지만 시장과 독자들을 고려해서 비교적 익숙한 <신장의 역사>라고 한 것 같다.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와 <신장의 역사>에는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특히 영화에서 화면 ‘구석’에 있는 듯하지만, 감독도 설명하지 않지만, 나는 주인공의 두 딸을 보고 울었다. 세 모녀의 모습은 감정의 응어리, 구조의 응축이다. 이들 인물의 공통점은 “여행을 통해 멀리 떨어진 사회와 사람들을 연결시키거나 다양한 혈통, 사상, 신앙, 충성심과 언어를 자기 내부에 융합시키면서 이 지역 역사의 특징을 이루는 매개성(betweenness), 조우와 중첩을 체현하고 있다는 점이다.”(488쪽)

나는 얼마 전 “나라다운 나라, 노동이 당당한 나라에서 사는 절망”이라는 글을 썼다. 박-최 게이트가 워낙 비상식적이어서 그렇지, ‘나라’와 ‘노동’은 무조건 지향해야 할 순수한 개념이 아니다. 다양한 이들의 개입으로 새로 구성해야 하는 경합적인 정치다. 매개성은 그 핵심적 사유가 될 것이다.

정희진 평화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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