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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순 시에 감전됐다” 미국 계관시인 로버트 하스

등록 2017-05-23 12:23수정 2017-05-23 13:56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방한
고은 시인 등과 오랜 인연 소개
“한국은 시를 사랑하는 나라…미국은 아니다”
22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대산문화재단 주최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미국의 시인 로버트 하스. 그는 최근 ‘2017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 대산문화재단 제공.
22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대산문화재단 주최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미국의 시인 로버트 하스. 그는 최근 ‘2017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 대산문화재단 제공.
“김혜순 시인의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마치 전기가 통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22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대산문화재단 주최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미국의 시인 로버트 하스(76)는 한국의 여성시인들에 찬사를 보내며 이렇게 말했다. 하스는 1995년~1997년 미국의 계관시인으로 그의 시집 <시간과 재료들>은 전미도서상과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고은 시인의 <만인보> 영문판에 서문을 쓰고, 바쇼 같은 일본의 하이쿠 시인들의 작품을 영어로 번역하는 등 아시아 문학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 이날 사회를 맡은 곽효환 대산문화재단 상무(시인)는 “한국 문학이 영어권에 진출하는 데 중요한 보증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와 한국의 인연은 1986년으로 거슬러 간다. 당시 한국을 방문한 그는 어린 시절 텔레비전으로 보아온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의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다고 회고했다. 그는 “삶이 충만하고 색감이 가득한 경이롭고 아름다운 한국과 사랑에 빠져 지도 하나 없이 일주일 동안 동네를 걸어 다녔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한국의 대학에선 매일같이 시위가 있었다. 민주화운동의 정점이었던 시기로 공기 중에 전기가 찌릿찌릿 통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전쟁으로 200만명의 사람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너무 무지했다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한국 작품을 읽고 알리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여행 중 우연히 고은 시인을 만나게 됐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한국의 시인들이 국제펜클럽에서 민주화 시위를 하는 현장으로 그를 데리고 갔을 때 “무대 뒤에 나이가 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마른 남자가 계속해서 큰 북을 치고 있었다. 매우 행복해 보였다. 시인이라는 저 사람이 누군지 알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고은 시인이 감옥에서 과거 자신이 만나온 모든 사람에 대한 시를 쓰는 <만인보> 작업을 구상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했다”며 그의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하스는 미국 계관시인 시절 미국의 주요 일간지인 <워싱턴 포스트>에 매주 칼럼을 기고했는데 이때 <만인보>에 대한 칼럼을 쓰기도 했다. 그는 웃으며 “한국에 가끔 오면 고은 시인을 만나는데 저는 한국어를 못하고, 고은 시인은 영어를 못해서 만나면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쳐다보기만 한다”고 말한 뒤 “고은 시인과 같은 지구를 공유할 수 있어 큰 영광”이라고 말했다.

고은 이후엔 최정례·김혜순 등 한국의 여성시인들의 작품이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밝혔다. 자신의 학교에서 한국의 여성시인들을 초청하는 행사, 그리고 최 시인의 아이오와대 강연 등에서 이들의 시를 접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그 당시 김혜순 시인의 시도 처음 읽었는데 학생들이 읽으면 머리통을 날려버리는 것 같은 충격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자신이 석좌교수로 있는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수업 시간에 한국의 시를 자주 소개한다며 “미국 학생들이 이상 시인의 시를 읽으면 ‘이 시인은 절반은 제임스 딘이고 절반은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 같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그는 “미국에선 인기 있는 시집은 5만부 정도 팔리고, 대부분은 2천부 정도 팔리는데, 한국에선 1쇄를 2천부 정도 찍는다고 알고 있다. 한국엔 시인도, 시를 사랑하는 사람도 많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하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미국에선 이민자의 경험을 쓴 시들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외국인혐오 현상이 불거지고 있는데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간담회를 마치며 ‘시는 교사가 앞에서 가르칠 때 학생들이 자기들끼리 적어 보내는 쪽지 같은 것’이라는, 2011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스웨덴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의 말을 소개했다. 그는 “한국과 중국과 브라질의 젊은 시인들이 서로의 작품을 읽으면서 살아 있다는 은밀한 느낌을 연결하며 폭력을 유발하는 (국가·인종 간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스는 25일 2017 서울국제문학포럼 중 ‘작가와 시장'이라는 주제의 세션에서 ‘가격을 매길 수 없는 것: 시와 시장에 대한 몇 가지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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