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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마지막에 남는 건 인류가 아닐 수 있다

등록 2017-05-18 19:34수정 2017-05-18 19:50

‘사피엔스’로 주목받은 유발 하라리
미래 인류 전망한 신작 ‘호모 데우스’

신기술로 일자리 대부분 사라지고
불로장생 누릴 특권층 ‘신적 존재’로

인간에 행복 선물 ‘데이터 시스템’
오히려 인류 도태시킬 수도 있어
호모 데우스-미래의 역사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김영사·2만2000원

유발 하라리가 돌아왔다. 이번엔 인류에게 닥칠 어두운 미래를 그린 섬뜩한 묵시록을 들고 왔다. 이 묵시록의 결말에 남는 것은 인류가 아닐 수도 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교수(역사학)인 하라리는 2015년 말 국내에 출간된 전작 <사피엔스>로 전세계 45개국에서 500만부 이상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사피엔스>에서 그는 “별 볼 일 없던 영장류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이 행성을 지배하게 됐는가”라는 질문을 탐구했다. 상상 속에 존재하는 허구적 개념인 법과 돈, 신, 국가, 기업 등을 믿는 능력으로 인간이 대규모로 유연하게 협력할 수 있었던 점이 호모 사피엔스(현생 인류)의 성공 비결이라고 그는 밝혔다.

그의 후속작은 출간 전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40개국에 출간계약을 맺은 <호모 데우스>(2015)는 과거 인류 역사에 초점을 맞춘 전작을 넘어 호모 사피엔스에게 닥쳐올 미래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10만년 동안 이어진 ‘호모 사피엔스’의 뒤를 잇는 ‘호모 데우스’의 탄생을 점친 것이다. ‘데우스’(Deus)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신’이라는 뜻이다. 하라리는 일종의 경고를 담은 이번 책에서 “인본주의가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 종교가 되었으며, 왜 인본주의의 꿈을 이루려는 시도가 그 꿈을 해체할 수 있는가”를 탐구한다. 그 탐구의 끝엔 우주적 규모로 데이터를 처리하며 스스로 발전하는 네트워크와 일개 데이터로 전락해 결국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는 인류가 있다.

하라리는 21세기에 인류가 추구할 의제를 이해하기 위해 인본주의가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 ‘종교’가 되었는지를 되짚는다.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나 중세 기독교 신을 지나 근대를 지배한 ‘허구의 그물’은 인본주의였다. 근대 이후 인간은 과학과 이성이란 힘을 가진 대가로 신이 부여해주던 의미를 포기하고 스스로 의미의 창조자가 되는 인본주의를 믿기 시작했다. 20세기엔 인본주의의 세 가지 분파인 자유주의, 사회주의, 진화론(나치즘 등)이 양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치는 과정에서 자유주의가 승리를 거뒀다.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말대로 체제 경쟁은 끝났고 역사는 종언을 고한 듯했다.

그러나 불멸, 행복, 신성을 추구하는 유전공학과 인공지능 같은 기술들이 잠재력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인본주의의 근간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알고리즘 기술의 발달로 군인, 변호사, 의사, 약사, 교사 등 많은 직업은 대부분 필요가 없어지고, 심지어 기업 경영자와 예술가의 자리도 침범당할 가능성이 크다. 21세기엔 일하지 않는 거대한 규모의 계급이 생겨날 것이다. 이들은 연인 선택이나 투표 등 중요한 결정들은 알고리즘에 맡기고 약물이나 가상세계 게임을 하다 가치 없는 삶을 마감해야 할지도 모른다.

유발 하라리는 신작 <호모 데우스>에서 “알고리즘이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면 사회, 정치, 일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라는 질문을 오랫동안 생각해보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장애와 질병이 생길 가능성을 제거하고, 천재 과학자나 예술가, 운동선수가 될 자질을 부여받은 ‘호모 데우스’가 탄생할 수 있다고 그는 예측했다. 김영사 제공
유발 하라리는 신작 <호모 데우스>에서 “알고리즘이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면 사회, 정치, 일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라는 질문을 오랫동안 생각해보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생명공학의 발전으로 장애와 질병이 생길 가능성을 제거하고, 천재 과학자나 예술가, 운동선수가 될 자질을 부여받은 ‘호모 데우스’가 탄생할 수 있다고 그는 예측했다. 김영사 제공
반면, 일부 특권계층은 유전공학의 발달로 유전자를 개량하고, 새로운 장기를 이식받아가며 젊고 건강한 육체로 백 년을 넘게 사는 ‘호모 데우스’(신이 된 인간)가 될 것이다. 부유층 자녀들은 수정란 단계에서 유전자 조작을 거쳐 장애나 비만, 불치병을 앓지 않도록 조정되고 뛰어난 외모를 갖게 되리라. 하라리는 천재 과학자와 예술가, 초인적 신체를 가진 운동선수를 만들어내는 것도 미래엔 가능해지리라고 본다. 카탈로그에서 자신의 아이를 선택하는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펼쳐질 수 있으며, 그때가 되면 모든 사람이 평등하고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자유주의는 붕괴할 것이다.

그러나 독자의 예상과 달리 ‘호모 데우스’조차 최종 승자는 아니다. 하라리는 인본주의가 무너진 자리에서 새로운 종교인 ‘데이터교’가 탄생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 신생 종교는 인간을 데이터 처리 시스템으로, 역사는 이 시스템의 효율을 높이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인류 역사는 문자와 화폐의 발달, 교역의 증대로 마을·도시·국가·세계로 점점 데이터 처리 시스템이 넓어지는 과정이기도 했다. 이제 데이터 처리 시스템은 인간들이 자발적으로 업로드한 생각과 행동, 신체 정보를 토대로 ‘인간보다 인간을 더 잘 아는’ 우주적 규모의 신과 같은 존재가 될 것이라고 본다.

데이터교는 인간에게 건강·행복·힘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게 해주겠다고 약속하겠지만, 결국 이 데이터 처리 시스템에 의해 인류가 사라져버릴 수도 있다고 본다. 만물인터넷(우주적 규모로 확장된 데이터 처리 시스템)이 된 시스템이 보기에 인간은 효율성이 떨어지는 한물간 데이터 처리 기계일 뿐이기 때문이다. 마치 인간이 네트워크 안에서 중요하지 않은 동물들의 삶을 하찮게 여기고 멸종시킨 것처럼 인간이 그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하라리는 “만물인터넷이 실제로 운용되기 시작하면, 우리는 엔지니어에서 칩으로, 그런 다음에는 데이터로 전락할 것이고, 결국 세차게 흐르는 강물에 빠진 흙덩이처럼 데이터 급류에 휩쓸려 흩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의 탄생’과 ‘데이터교 혁명’이 백 년 안에 이뤄질 것으로 내다보면서 이미 변화가 시작됐다고 지적한다. “차라리 그 전에 죽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우리에게 의미 있는 세계는 몇십 년 안에 무너질 수 있다. 세상과 무관한 존재가 되기 전에 죽으면 그만이라고 안심할 수는 없다. 2100년에 신들이 거리를 돌아다니지는 않더라도, 호모 사피엔스의 성능을 높이려는 시도가 이번 세기 안에 세상을 몰라볼 정도로 바꿀 것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디스토피아의 미래가 올 가능성이 크다 하더라도, 반드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인류는 지난 70년간 처음으로 “연극의 1막에 등장한 총은 3막에서 반드시 발사된다”는 안톤 체호프의 법칙을 깨고, 지구를 여러 차례 멸망시킬 수도 있었던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기적을 보여줬다. 이제는 중동 분쟁, 유럽 난민 사태, 지구 온난화 같은 ‘작은 문제’보다 이런 데이터교의 교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가장 긴급한 정치·경제적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하라리는 주장한다. “이 책의 목표는 단 하나의 결정적인 시나리오를 예측함으로써 우리의 지평을 좁히는 대신, 지평을 넓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의 스펙트럼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넓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하라리는 역사와 과학이라는 망치로 안온하게 정박해 있던 항구를 부수고 격랑이 몰아치는 바다로 인류를 다시 떠내려 보낸다. 역사상 가장 위협적인 폭풍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류는 다시 눈을 들어 앞을 내다보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그 시도가 물거품이 될지라도.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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