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창비) 전면개정판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황석영(오른쪽) 작가가 출간 당시 상황과 전면개정판 출간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간행위원장을 맡은 정상용 전 의원(맨왼쪽), 공동집필자 이재의(가운데)씨도 함께 자리했다. 사진 창비 제공
5·18민중항쟁에 대한 최초의 책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창비)가 32년 만에 전면 개정판으로 새로 나왔다.
애초 ‘죽음을…’은 1980년 5월항쟁 이후 다양한 분야의 관련자 수십명이 모은 증언과 자료를 전남대생 이재의씨와 친구 조양훈씨가 40여명을 추가로 인터뷰해 책을 집필했다. 작가 황석영이 책임 집필을 맡아 그의 이름으로 1985년 처음 출간됐다. 유신독재를 피해 76년 낙향한 황 작가는 광주와 해남 등 전남지역에 살며 장편대하소설 <장길산> 집필을 막 끝낸 무렵이었다. 당시 대학가에서 ‘넘어넘어’라는 약칭으로 불린 책은 암암리에 돌려보며 ‘지하 베스트셀러’가 됐고, 이후 영문판과 일본어판으로도 번역돼 국내외에 광주의 참상을 알렸다.
5공정권과 공안당국은 비밀리에 진행된 제본 정보를 입수해 2만부를 압수하고 지금은 고인이 된 풀빛출판사 나병식 대표를 구속했다. 하지만 필명이 높은 황 작가를 구속해 재판에 넘기면 광주학살의 진상이 더 알려질 것을 우려해, 수사만 한 뒤 ‘국내에 머물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풀어줬다. 그때부터 황 작가는 유럽을 거쳐 미국, 일본 등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광주의 진실을 알렸다. 1989년 문익환 목사에 앞서 방북한 그는 4년 더 망명생활을 한 뒤 자진귀국해 5년간 징역살이를 했다.
1985년 초판 대표집필 13년간 수난
“수구세력 ‘5.18폄훼’ 맞서 재간행”
청문회·군사작전 기록 등 2배 늘어
간행위원들 ‘전두환 회고록’ 비판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개정증보판 표지.
11일 출판사 창비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마련한 개정증보판 출간 간담회에서 황 작가는 “초판 때 구속되면 광주에서 죽어간 젊은이들에 대한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가실까 하는 부채감으로 책을 냈다”면서 “이후 13년간 글을 쓰지 못한 채 수난을 겪었지만 문단 동료들이 ‘온몸으로 문학을 살아냈다’고 위로해줬다”고 말했다. 그는 "평생 ‘광주’라는 그곳이 나를 놓아주지 않아서 그 덕분에 다른 길로 가지 않고 제 문학의 특성을 유지하지 않았나 싶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북한 특수부대 침투설’ 등 5·18에 대한 극우세력의 폄훼와 왜곡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자 저자들은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전면개정판 발간을 계획했다. 황 작가는 "북한군 개입이나 지령설은 분단 이후 독재체제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써먹던 정치공작의 일종"이라고 꼬집었다.
2014년 간행위원회를 구성해 시민들의 후원을 받았다. 이번엔 황 작가와 이씨, 그리고 80년 당시 들불야학 교사였던 전용호씨가 함께 썼다. 5·18 재판과 청문회 기록부터 군사작전 문서 등 이후 나온 자료를 대폭 보강해 초판에 비해 2배 이상 분량이 늘어난 600쪽의 두꺼운 백서가 됐다.
특히 그동안 계엄군의 최초 집단 발포는 80년 5월21일 오후 1시 전남도청 앞에서 있었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하루 전인 20일 밤 10시30분 광주역 앞에서 계엄군이 집단발포해 이미 5명이나 사망했다는 사실이 온전하게 복원됐다. 또한 사망한 것으로 기술했던 고교생 김영찬이 실제론 목숨을 구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정정하는 등 초판에 있던 오류 10여 가지도 다시 바로잡아 정확도와 신뢰도를 높였다. 간행위원들은 가까운 시일 안에 영문판과 일어판, 내용을 축약한 청소년판도 발간할 예정이다.
이날 간담회에선 지난달 출간된 <전두환 회고록>(자작나무숲)에 대한 간행위원들의 성토도 이어졌다. 저자 이씨는 “전씨는 양민학살이나 발포명령은 없었고 자신 역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데, 계엄군이 대낮에 시민 수십명을 총으로 쏴 죽인 것은 만천하에 밝혀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당시 전남민주청년운동협의회 의장으로 초판 출판작업을 추진했던 정상용 간행위원장(전 국회의원)도 “전씨의 회고록이 마침 잘 나왔다. 국민 대다수가 원하지 않는 정치적 사면을 해주면 어떻게 되는지 전씨가 잘 보여준다”며 극우세력의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 요구에 대해서도 일침을 놨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가 새로 들어선 만큼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부대별 전투상황 보고 등 자료가 공개되어 더욱 진실이 명확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 전 의원은 “60여명의 행방불명자는 암매장됐다고 판단되는데, 지금이라도 이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낼 수 있도록 관련 기록이나 계엄군의 증언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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