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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요람에서 무덤까지 ‘맥도날드화’

등록 2017-05-11 19:59수정 2017-05-11 20:22

1993년 초판 나온 고전 개정 8판
‘합리성의 불합리성’ 사회학적 분석
집단적·개인적 저항방법도 제시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조지 리처 지음, 김종덕 김보영 허남혁 옮김/풀빛·2만3000원

패스트푸드점은 실로 지구 전체를 뒤덮었다. 맥도날드는 1955년 본격적인 창업 뒤 2013년까지 3천억개라는 천문학적인 숫자의 햄버거를 팔아치웠다. 그해 매출은 에콰도르 국내총생산보다 많은 281억달러를 달성했다. 세계 120여개국에 매장이 있는 맥도날드의 하루 평균 방문 고객 수는 7천만명에 이른다. 세계통화 구매력지수를 나타내는 ‘빅맥 지수’가 있고, 맥도날드 매장의 유무는 지역 문화의 가늠자가 되었다. 매장의 상징인 ‘황금 아치’는 “천국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곳” “현대판 대성당” “신성한 장소” 같은 말과 함께 종교화된 심벌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대학입학 논술시험에 지문으로 제출되면서 이 책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는 한국 대입 수험생들의 필독서가 됐다. 대학에서도 학부생들의 교재로 쓰이며 사회학 고전 반열에 올랐다. 1999년 처음 번역 출간된 이 책은 2003년 개정판이 나온 데 이어 절판되었다가 최근 14년 만에 개정 8판(2014) 번역으로 출판사를 옮겨 다시 나왔다. 첫 번역자인 김종덕 경남대 사회학과 명예 석좌교수와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한 김보영 번역가, 농업과 먹거리 문제 연구가 허남혁씨가 함께 옮겨 번역에 정성을 기울였다.

사회학자 조지 리처는 2012년 패스트푸드 노동자들을 필두로 불붙은 최저임금 인상운동이 책 개정의 계기가 되었다고 밝힌다. 사진은 2014년 5월15일 서울의 한 맥도날드 매장 앞에서 진행된 ‘세계 패스트푸드 노동자의 날 한국행동’ 시위 장면.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사회학자 조지 리처는 2012년 패스트푸드 노동자들을 필두로 불붙은 최저임금 인상운동이 책 개정의 계기가 되었다고 밝힌다. 사진은 2014년 5월15일 서울의 한 맥도날드 매장 앞에서 진행된 ‘세계 패스트푸드 노동자의 날 한국행동’ 시위 장면.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1993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책의 원제는 ‘사회의 맥도날드화’(The McDonaldization of Society). ‘맥도날드화’란 “패스트푸드점의 원리가 미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서 점점 더 많은 부분을 지배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런 맥도날드화의 특성은 효율성, 계산가능성, 예측가능성, 통제로 압축된다. 이를테면 소비자가 꽤 싼 가격을 지불하며 고픈 배를 ‘빨리 효율적’으로 채우는 것, 노동자가 ‘빨리 값싸게 효율적’으로 움직이며 일하는 것, 세계 어디서나 같은 맛의 햄버거를 먹을 수 있으리라는 예측성, 소비자나 노동자 모두 계산된 동선 아래 고도의 통제를 받으면서 속도감 있게 움직이는 것 등이 맥도날드화의 특징이다.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지은이 조지 리처는 근대 이후 관료제의 성장과 발전을 해명한 막스 베버의 이론을 바탕으로 합리성이 낳은 불합리성을 밝히면서 개인 삶의 전 영역과 사회 구조를 장악한 맥도날드화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맥도날드화는 과연 누구의 삶을 지배하고 누구의 생활을 더 윤택하고 행복하게 했을까. 개정판 서문에서 지은이는 2012년 패스트푸드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불붙은 최저임금 인상운동이 책 개정의 계기가 되었다고 밝힌다. 사실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되어 맥도날드화된 노동(맥잡)이 처한 환경은 더욱 위태로워지고 있다. 과학적 관리가 관료제 위계의 가장 낮은 수준인 블루칼라 노동의 작업을 무인 테크놀로지로 먼저 대체하고 통제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지은이는 2008년 불황 이후 저임금 일자리가 증가하고 패스트푸드점 노동자 중 성인의 비율이 점점 늘어난 것, 저임금을 바탕으로 기업 이윤이 성장했다는 점을 보강했다.

맥도날드화는 점점 열기를 더해 간다. 글로벌 기업이 제국주의적 야망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그로벌라이제이션(grow+globalization) 현상, 상품 등록과 주문을 용이하게 한 이베이 모델, ‘좋아요’ 예측 알고리즘을 적용하는 페이스북 또한 맥도날드화의 사례로 꼽힌다. 이 또한 효율성, 예측가능성, 통제와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뿐인가. 호들갑스럽게 신체를 접촉하지 않고도 컴퓨터만 켜면 되는 간편한 섹스, 물건 사듯 원하는 아이를 갖게 하는 임신과 출산, 경영 합리화로 환자와 의료진을 소외시키는 병원산업, 브랜드화한 초대형 교회, 짧은 뉴스 소비로 담론의 질이 추락한 정치, 죽음과 임종의 소비자로서 장례식… 요람에서 무덤까지 모두 맥도날드화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10일 서울 광화문 한국맥도날드 본사 앞에서 국내 첫 맥도날드 노조 출범 기자회견 장면. 초대 노조위원장이 불이익을 받을까봐 맥도날드 포장 용지로 얼굴을 가리고 회견을 진행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지난해 11월10일 서울 광화문 한국맥도날드 본사 앞에서 국내 첫 맥도날드 노조 출범 기자회견 장면. 초대 노조위원장이 불이익을 받을까봐 맥도날드 포장 용지로 얼굴을 가리고 회견을 진행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이에, 지은이는 삶의 맥도날드화를 바꿀 수 있는 독자들의 행동을 촉구한다. 노동조합 설립 운동, 최저임금 인상 운동, 맥도날드 앞 국제 집회, 슬로푸드 운동, 느린 여행과 관광, 심층적인 뉴스 소비, 요리나 뜨개질 등 ‘반맥도날드화 행동지침’은 집단 저항에서 개인 소비까지 촘촘하기 짝이 없다. 패스트푸드의 편리함과 즐거움은 익히 아는바, 그럼에도 희생은 너무나 컸기에 이 시스템의 과잉을 완화하는 ‘틈새’를 아주 세심하게 만들어가자는 제안이다. 시인 딜런 토머스의 말을 들려주며 그는 책을 쓴 ‘본심’을 대놓고 밝힌다.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말라. (…) 빛이 꺼져감에 분노하고 또 분노하라.”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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