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 캐넌·피다 커비 엮음, 정진상 옮김/삼천리·1만9000원 1999년 우고 차베스가 베네수엘라 정권을 잡은 것을 시작으로 2000년 칠레, 2003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2005년 우루과이, 2006년 볼리비아와 니카라과, 2007년 에콰도르 등 남미국가는 ‘신좌파’로 물들었다. 이를 ‘분홍물결’로 칭한다. 이 정권 블록은 자본의 반항과 이에 대응하는 대중의 저항을 거치며 2005년 ‘21세기 사회주의’를 선언한다. <21세기 사회주의>의 원제는 ‘시민사회와 라틴아메리카의 신좌파: 민주화의 도전과 한계’이다. 제목에서 정확하게 드러나듯 책은 신좌파 정권에서 시민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민주주의의 질을 향상시켜 나갔는지를 들여다본다. 정권이 시민사회의 공적 역할을 위해 어떤 법적인 장치를 추가했는지도 설명한다. 예를 들어 유명한 ‘베네수엘라 볼리바르공화국 국가경제사회발전계획요강’(2007~2013년)에는 직접민주주의를 보장하기 위해 선출직 공무원을 임기 절반 이후 소환할 수 있는 국민소환 투표, 민중의 공동입법 형태인 사회적 길거리 의회 제도, 국가기관·지역 공동체와 연결한 자율적인 민중권력의 ‘공동체위원회’, 공동체위원회의 ‘공동체 직접 사회적 소유 기업’ 등의 제도가 도입되었다. 시민사회는 이 과정에서 ‘강한 공공성’을 띠게 된다. ‘강한 공공성’은 페미니스트 정치철학자 낸시 프레이저가 제시한 개념으로 “단순한 여론 형성과 감시자 역할”을 부여하는 자유주의적 ‘약한 공공성’과 구분하여 일컫는 말이다. “강한 결사체적 역동성과 포용적·비판적 토론에 대한 헌신”이란 특징을 지닌다. 2012년에 나온 책이기에 2013년 차베스 사망 이후 경제가 파탄나고 정부와 시민의 대립 양상이 복잡해진 현재의 베네수엘라는 분석대상이 아니다. 책은 역으로 제도가 마련되더라도 상황에 따라 시민사회가 어떤 식으로 급락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구절절한 분석으로도 읽힌다. 촛불 여론을 강한 공공성을 띤 형태로 어떻게 제도화할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오히려 지금 한국에 더 유효하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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