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인권공동체를 찾아서 -지역 인권체제의 발전과 전망
백태웅 지음, 이충훈 옮김/창비·3만8000원
인권법학자 백태웅의 첫 국내 저서 <아시아 인권공동체를 찾아서>가 번역 발간됐다. 2012년 케임브리지대학 출판부에서 펴낸 이 책은 아시아의 지역 인권체제를 규범, 기구, 이행의 측면으로 나눠 분석했다. 남북한, 중국, 일본, 몽골 등 동아시아 23개국을 중심으로 기본적인 인권조약, 역사, 각국의 헌법 등을 총 500쪽에 걸쳐 정교하고 사려 깊게 검토하면서 현재를 조망하고 변화의 방향을 학술적, 실천적으로 타진했다.
80년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옥고를 치른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지은이는 “짧은 시간을 기약하고 떠나 공부를 하다 보니 점점 깊이 빠져들어 오늘까지 왔다”며 “미국에서 살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번도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지금은 미국 하와이대 로스쿨에서 국제인권법, 비교법 등을 가르치는 한편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대표하는 유엔 강제실종 실무그룹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책 출간을 맞아 전자우편으로 보낸 몇가지 질문에 그는 친절하고 소상하게 답변했다. 더 긴 인터뷰는
<한겨레> 누리집(https://www.hani.co.kr/arti/culture/book/791517.html)에서 만나볼 수 있다.
<아시아 인권공동체를 찾아서>를 쓴 백태웅 하와이대 로스쿨 교수. 미국으로 건너가 인권법을 연구하는 학자가 되어 현재 유엔인권이사회 등 국제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창비 제공
-아시아에서 인권적 가치를 높이는 데 어떤 과정이 필요한가?
“인권보장을 위해서는 시민사회가 인권의 가치를 공유하고 연대하고 운동하면서 변화를 이뤄가는 과정이 중요하다. 경찰을 민주화하고 검찰과 사법부가 제 역할을 하도록 개혁하고, 헌법 정신과 민주주의가 보장되는 사회로의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모두 인권을 실행하기 위한 과정이다. 인권은 변화를 위한 운동 속에서만 보장된다.”
-특히 동아시아의 인권은 일본 제국주의 폭력과도 관계가 깊은데.
“일본의 최근 움직임에 아쉬움이 많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도 일본의 국가 책임을 부정하고 과거를 부인하는 데 더 강조점을 두고 있다. 또 일본은 위안부 동원 실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민족 감정에 동조하여 ‘소녀상’ 철거를 외교적 초점으로 만들고 있다. 일본이 과거 인권침해 사실에 대한 진심 어린 반성과 해결을 위한 과감한 조처를 취하며 아시아 내에서의 인권 협력을 적극 주도하는 역할을 해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015년 연말 한·일 양국의 위안부 합의에 대한 생각은?
“한-일 위안부 합의는 조약이나 협정도 아니고, 국가간의 구속력 있는 법적 합의의 기본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의 전쟁 기간 인권침해를 밝히고 위안부 피해자를 설득하기 위한 노력도 없이 정부간 협의를 통해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선언한 것은 무효라고 생각한다. 위안부 할머니들과 시민사회의 반발은 당연하다. 다음 정부가 이 논의를 발전시켜주기를 희망한다.”
-한반도 긴장 완화에 대해 조언한다면?
“사실 지금 세계는 매우 위험한 지점을 지나고 있다. 냉전 이후 새로운 세계질서는 지연되고, 반테러 중심의 분쟁이 미국과 중·러 사이의 전통적 갈등관계로 바뀌기 시작했다. 일본의 신군국주의, 남중국해 분쟁, 민족주의 경향 강화와 국지적 충돌 가능성 성장 등 여러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한국 정부가 아시아 지역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와 번영의 미래를 여는 방향으로 미국과 일본, 중국을 설득하고 북한도 변화시켜야 한다. 전쟁과 평화의 기로에 서 있는 아시아에서, 한국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아시아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북한의 핵 개발과 인권 문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핵 개발과 미사일 등 국제법 위반 행위에 대한 강력한 제재와 비핵화를 위한 국제적 대화 체제를 유지하되, 경제적 협력과 인권 대화 등 다방면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개입 정책을 통한 사회의 변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투 트랙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권과 관련해 차별금지법 논란이 여전하다.
“우리 헌법 제11조가 평등권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구체화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은 당연히 진행되어야 한다. 21세기의 세계는 성별이나 성적 지향에 근거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을 국제적 인권의 기준으로 확립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 기준을 한국 사회가 담아내지 못한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촛불시위, 대통령 파면, 구속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이었나?
“한국 사회가 지난 몇달간 보여준 촛불시민 혁명의 과정은 지난 수십년간 우리 사회가 쌓아온 민주주의의 근간이 튼튼하고 또 희망적임을 확인해주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많은 미국 사람들이 한국 시민사회의 성숙성에 감동하고 그것을 배우고 싶어 한다. 촛불 속에 드러난 국민들의 염원이 한국 사회의 힘이고, 그것이 이후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와 변화를 만들어가는 가치의 원천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