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화의 어린이책 스테디셀러
진형민 지음, 한지선 그림/창비(2013) 아침부터 사거리가 시끄럽다 했더니 선거 유세차량에서 노래가 찢어지게 나온다. 날마다 뉴스에서는 대통령 후보들의 지지율이 어떤지, 누가 무슨 잘못을 했네 하는 보도가 쏟아진다. 다행인 건 이번 선거에 젊은이들의 관심이 높다는 거다. 평소 정치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는 30대 책방 아저씨가 불쑥 이런 말을 건넸다. “제가 원래 투표를 잘 안하는데요, 이번에는 해야겠어요.” 많은 대가를 치렀지만 살아 있는 공부가 된 것은 분명하다. 일련의 사건과 이번 선거 과정을 아이들과 함께 보는 어른들이라면 이 책을 같이 읽어보길 권한다. <기호 3번 안석뽕>은 학생회장 선거를 둘러싼 이야기다. 석진이는 시장 사람들이 “떡집 석뽕이”라고 불러대는 걸 빼고는 지극히 평범한 아이다. 애초에 선거에는 관심도 없었다. 문제는 회장 선거를 준비한다며 잘난 척하는 반장이 꼴보기 싫어, 시장통 아이들 중 한명이 ‘우리도 선거 준비한다’고 허세를 부리면서 시작되었다. 그나마 성적이 중간인 석진이가 밀리다시피 회장 선거에 나가기로 한 것이다. 장난으로 시작했지만, 시장통 아이들의 생각은 곱씹을 만하다. 아이들의 슬로건은 “일등만 사람이냐, 꼴찌도 사람이다. 꼴찌까지 생각하는 기호 3번 안석진”이다. 반장의 슬로건은 “기호 1번 명품후보 고경태”다. 하지만 석진이는 반신반의한다. “학교란 공부 잘하는 애들 위주로 돌아가는 데 아닌가. 어쩌다가 무슨 일을 잠깐 맡는다 해도, 공부 못하는 게 재수 없이 설친다는 소리나 안 들으면 다행인 거다.” 석진이가 다른 생각을 하게 된 건, 시장 코앞에 들어선 대형마트 때문이다. 시장 슈퍼집 딸인 백보리를 따라, 대형마트에 바퀴벌레를 살포하러 간 석진이는 그제야 깨닫는다. 마트라는 괴물이 시장 가게들을 모두 잡아먹으려 하고 있다는 걸. 이 때문에 경찰서에 잡혀간 석진이는 마트 사장님 앞에서 그저 잘못했다고, 용서해달라고 비는 아버지를 보고 또 생각을 한다. “왜 아버지는 슈퍼 아줌마처럼 떵떵거리며 큰소리치지 않았을까?” 동화는 개성 강한 시장통 아이들과 사람들이 등장해 내내 흥미진진하다. 게다가 회장 선거를 소재로 삼았으나 이내 힘센 자와 약자의 이야기로 확대된다. 무엇보다 이 과정을 통해 석진이는 자기 말대로 생각이란 걸 하기 시작했다. 물론 동화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석진이가 회장이 되는 그런 드라마틱한 일은 단번에 생기지 않는다. 인간의 역사에서 변화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니까. 그래도 석진이는 아버지랑은 좀 다르게 착한 사람이 될지 모른다는 기대를 품어본다. 석진이의 아버지는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다는 소리를 듣는 착한 사람이다. 하지만 착한 사람이라고 해도 자신의 권리는 자신이 지키지 않으면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다. 석진이는 회장 선거에 나가 이렇게 말한다. “저는 언제나 개자식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우리 학교를 위해 사자처럼 일하겠습니다.”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초등4~6학년. 한미화 출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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