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여자전-100인 릴레이 독후감’ 김서령 작가-박혜숙 대표
<여자전-한 여자가 한 세상이다>를 쓴 김서령 작가(오른쪽)와 출판사 푸른역사의 박혜숙(왼쪽) 대표.
현대사 질곡 살아낸 여성 7명 구술담 ‘여자전’ 10년 만에 개정판 출간해
‘페친들’ 자발적 독후감 인증샷 올려 이례적 입소문 타고 두달새 3쇄 ‘돌풍’
7일 책 주인공 이선옥씨와 토크쇼도 ‘100인 릴레이’의 첫 주자는 김형민 피디였다. 이미 ‘에스엔에스(SNS) 글쟁이’로 이름난 그가 지난달 중순 자신의 페북 담벼락에 올린 <여자전> 명서평이 입소문의 시작이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자들 가운데에는 평범한 사람도 있고 특출한 사람도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20세기 어느 나라에 비교해 봐도 ‘압도적으로’ 험준한 현대사의 격랑을 필사적으로 헤쳐 나온 이들이라는 점이겠다. 김서령 작가는 그 파도 속으로 깊은 자맥질을 하며 일곱 명의 여자들의 자취를 캐고 그들이 일으킨 물보라의 무늬를 좇는다. 그리고 물속에서 나와 거친 숨과 함께 토해내는 한마디. ‘한 여자가 한 세상이다.’” ‘너무나 춤을 추고 싶어 기생질 하려는 거냐며 들이대는 오빠들의 매에 종아리가 퉁퉁 부으면서도 춤을 추었고, 세계적인 춤꾼이 된 여자 이선옥은 빨간색. 안기부를 의자 만드는 ‘안전사’라는 목공소로 착각하고 “의자나 잘 만들면서 처박혀 있어라 이 나쁜 놈아” 하고 퍼부어댄 에너지 만점의 바탕골 대표 박의순은 상큼한 주황색. 한 달간 짧은 사랑을 교통사고로 잃고 유복녀를 길러낸 뒤 결혼도 하지 않은 ‘남편’과 합장할 날을 기다리는 최옥분 할머니는 수줍은 노란색. 어느 보험회사 광고에서 두 손가락으로 물구나무를 서는 모습을 보여준 어마무시 여든여덟의 중국 기공 대가 윤금선은 시들지 않는 초록색. 부잣집에서 태어났으나 가족들을 찾아 산에 들어가 동상으로 발가락을 송두리째 잃은 빨치산, ‘서른여덟 번’ 이사를 하게 만들었던 경찰의 감시를 이겨내고 일가를 이룬 고계연 할머니의 속은 새파란 쑥물. 무려 54년 만에 이산가족상봉단에 끼어 남편을 만났으나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던, 이후 일본을 거쳐 온 남편의 편지에 적힌 “귀한 몸 건강히 지내는지” 한 구절에 감격하여 폭발시킨 김후웅 할머니의 눈물은 아마도 남색. 일제 위안부로 끌려가 온갖 참혹한 꼴을 다 당했던, 역사가 휘두르는 쇠몽둥이와 인간의 잔인함으로 날 세운 쇠좆매에 난타당한 김수해 할머니의 살은 피멍의 색깔, 보랏빛.’ 일곱 여자의 삶을 무지개 빛깔로 갈무리해낸 그는 “김서령 작가의 부럽기 짝이 없는 글솜씨”까지 빠뜨리지 않고 소개해 감동을 줬다. 그러자 이미 읽었다거나 읽고 싶어 책을 샀다는 페친들의 <여자전> 인증샷이 댓글로 이어졌다. ‘먹먹하다’ ‘펑펑 울었다’ ‘무거운 이야기인데도 술술 넘어간다’ ‘한꺼번에 읽기 아까워 하루 한 편씩 아껴 읽는다’ ‘딸에게 권했다’…, 멀리 이국땅에서 읽었다는 페친들도 하나둘이 아니다. “그 댓글들을 보고, 아이디어가 떠올라 페친들에게 ‘100인 릴레이’를 이어달라고 했더니,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어요. 워낙 ‘서령체’라고 불릴 정도로 맛깔스러운 작가의 글솜씨에 반한 페친들이 많거든요.”(박 대표) 김 작가가 글쓰기 스승으로 모시는 송기원 작가와 ‘지맘대로 애인’ 류근 시인을 비롯한 문인들, 임재경 채현국 김판수 선생 같은 원로들, 동네 이웃인 ‘서촌의 옥상화가’ 김미경, <조선 침략 참회기>의 저자로 최근 부산 일제강제동원역사관에 일본군 위안소의 콘돔 실물을 기증한 이치노헤 스님 등등이 대표적이다. 경북 안동의 ‘3대 종가’로 꼽히는 의성 김씨의 집성촌 내앞에서 나고 자란 김 작가는 어릴 때부터 층층시하 어른들 품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책에 실린 ‘김후웅 할머니’는 작가의 하나뿐인 고모로, 일찍 여윈 어머니를 대신해준 존재이기도 하다. 경북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뒤 대구에서 국어교사를 하던 그는 80년대 중반부터 <매일경제신문>과 <샘이 깊은 물> 기자를 거쳐 프리랜서 칼럼니스트로 여러 매체에 주로 인물 이야기를 써왔다. 오래된 이야기연구소를 꾸리며 <김서령의 가> <김서령의 이야기가 있는 집> <참외는 참 외롭다> 등 저서도 여럿 냈다. “사실 <여자전>은 새로 쓴 게 아니고, 2000년대 초 한 시사월간지에 연재했던 인물 인터뷰 중에서 현대사를 관통하는 삶을 겪은 여성 이야기만 따로 묶은 책이어서 별 기대를 하지 않았거든요. 독자들이 ‘서령체’라는 명칭을 만들어줘서 참 기뻐요.(웃음)”(김 작가) 누구도 예상 못한 호응 덕분에 책은 한 달 만에 2쇄를 넘더니, 조만간 3쇄를 찍는다. 하지만 이런 돌풍의 배경에는 ‘두 여자’의 남다른 인연과 자매애도 깔려 있다. “집주인과 세입자로 처음 만났어요.” “부동산에서 소개받았다고 맨 처음 전화했을 때는 목소리가 걸걸해 남자인 줄 알았어요.” 지난 2000년대 초 북한산 산기슭에 자리한 김 작가의 집 4층 다락방에 박 대표가 입주해 7년 가까이 살았단다. “이미 페친들에게 ‘문필봉’이 보이는 명당이라고 자랑했듯이, 그 시절에 푸른역사의 기반을 다져준 베스트셀러들이 줄줄이 쏟아졌거든요.”(박 대표) “맞아요. <여자전> 초판도, 이번 개정판도 박 대표의 탁월한 기획력이 만들어낸 거예요.”(김 작가) 서로의 든든한 팬이 된 두 사람은 의기투합해 이번에 “안 하던 짓”을 한 가지 더 한다. 책 속 주인공인 선무가 이선옥 할머니와 작가의 인터뷰를 재연하는 ‘여자전 토크쇼’다.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7일 저녁 7시30분에 한다. 070-7539-4822. 글·사진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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