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한국사 -전근대편, 근대편, 현대편
한명기, 이기훈, 박태균 외 20명 지음/창비·4만5000원(세트)
심용환의 역사 토크 -시시비비 역사 논쟁에서 절대 지지 않는 법
심용환 지음/휴머니스트·1만6000원
국정 역사교과서 논란은 역설적으로 역사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방송을 통해 각종 역사 강연이 화제가 되고, 유명 역사 강사의 책들이 베스트셀러 상위에 오르고 있다. <쟁점 한국사>(전 3권·창비)와 <심용환의 역사토크>(휴머니스트)도 교과서 국정화를 중대한 퇴보로 여기고 이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역사학자들이 나서서 만든 책들이다.
<쟁점 한국사>는 한명기 명지대 교수, 이기훈 연세대 국학연구원 교수,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등 역사학자 23명이 함께했다. 고조선부터 2002년 한일역사교과서 문제까지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켜온 굵직한 역사 쟁점들을 골라 “하나의 올바른 역사”가 아닌 “24가지 다채로운 한국사”를 구성하려 했다. 지난해 2월 연 창비학당 강좌와 토론내용을 묶어 ‘전근대편’(고조선~조선시대), ‘근대편’(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현대편’(해방 이후)으로 8개 쟁점씩 나눠 실었다.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는 피해자의 의견을 한 마디도 묻지 않았다. 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참여연대, 창비 제공
‘전근대편’에서 눈에 띄는 쟁점은 고조선의 시공간을 둘러싼 논쟁이다. 송호정 한국교원대 교수는 재야사학계가 주장하는 단군조선이 기원전 2333년에 건국되었다는 믿음이 왜 명백한 허위인지 따져 본다. 송 교수는 “동아시아 청동기 문명의 본격적인 발달은 기원전 10세기 이후부터”라며 “고조선 역사의 출발 시점은 그 이후로 설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고조선이 처음부터 광활한 영토를 거느린 국가였다는 재야사학계의 시각은 “우리 역사와 민족에 대한 지나친 우월의식이 작용한 결과”라고 본다.
‘근대편’에서 박찬승 한양대 교수는 ‘건국절’ 논란을 정면으로 다루진 않으나, 1919년 10월 임시정부가 대내외에 알린 민족대표 30인의 선언서를 인용한다. 그해 4월의 임시의정원과 임시국무원 성립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졌음을 이미 천명했다는 것이다. 소현숙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인문한국(HK) 연구교수는 한일 외교 최대 쟁점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짚으면서, 정대협과 한국 내셔널리즘이 일본과의 화해 가능성을 날려버렸다는 <제국의 위안부> 지은이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주장을 반박한다. ‘현대편’에서 홍석률 성신여대 교수는 이승만부터 박정희 정부까지 이어져 온 한미관계를 조명한다. 한미동맹의 제도적 기초가 한미상호방위조약(1953)에 있고, 그 뒤 베트남 파병이 두 나라의 밀월관계 유지에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박태균 교수는 베트남 전쟁과 관련해, 당시 한국군에 대한 한국과 베트남 양국의 다른 평가와 기억을 풀어낸다. 한국 주류가 우방과의 신의를 지키고 경제성장에 일조한 공로자들로 평가하는 파병군인들이 베트남에서는 민간인 학살의 가해자로 기록돼 있는 것을 지적하면서 베트남에 진정한 사과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면서 남산 위에 솟아 있던 이승만의 동상도 끌어내려졌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창비 제공
<역사전쟁>(2015) <단박에 한국사>(2016) 등을 펴낸 역사강사 심용환이 쓴 <심용환의 역사 토크>는 좀 더 쉽고 가볍게 한국사의 쟁점을 짚는다. 위안부, 친일파, 식민지근대화론, 이승만, 박정희, 고대사 논쟁을 키워드로 쓴 ‘읽는 토크쇼’다. 저자를 대변하는 ‘심 선생’이 등장해 여러 사람과 대화하는 방식으로 풀어쓴 이 책은 일러스트와 표 등을 풍부하게 사용해 이해를 돕는다. 저자는 박정희의 친일행적을 시대적 아픔으로 감싸안으려는 시각에 대해 그와 같은 시대를 산 또래 윤동주, 장준하를 데려와 비교하며 박정희의 기회주의를 비판한다. 일본군 ‘위안부’들이 돈을 많이 벌었다는 터무니없는 유언비어 등을 지적하면서 위안부 문제는 ‘여성·인권문제’이자 ‘식민 범죄’라는 사실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수차례 민주혁명을 경험한 나라가 이렇게도 제대로 된 역사 청산을 이루지 못했다”고 개탄하면서 “이제라도 지난 역사를 제대로 마감하고 새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덧붙인다.
일제시대에 태어나 청년기를 보낸 이들은 어떤 삶을 선택했을까. 박정희가 체제순응적인 삶을 택한 반면 또래인 장준하, 문익환, 윤동주(뒷줄 왼쪽부터)는 변혁적인 삶을 살았다. 앞에 앉은 사람은 박정희 정권때 국무총리 등을 지낸 정일권. 휴머니스트 제공.
‘역사’는 과거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중국은 지금 사드 문제를 빌미로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고, 일본은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고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역사 왜곡을 일삼는다.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광화문과 서울역 광장에선 역사인식이 서로 다른 세대와 계층이 각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역사 바로 보기가 절실하다.
<쟁점 한국사>에서 한명기 교수는 “위기의 시간일수록 과거를 경계하여 미래를 대비하는 징비의 마음가짐이 절실하다”면서 역사를 새롭게 반추해야 우리 앞에 닥친 고난을 헤쳐나갈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기훈 교수는 “머지않아 역사학에서도 2016년 격변과 촛불의 의미를 다룰 것”이라면서 “지금은 알지 못하는 이 시간의 의미를 그때는 이해할 수도 있으리라. 역사의 힘이란 그런 것”이라고 말한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