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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마음 지옥’ 빠졌다면 시를 처방합니다

등록 2017-03-09 19:31수정 2017-03-09 20:34

내 마음이 지옥일 때
이명수 지음, 고원태 그림/해냄·1만4800원

“내 가슴에서 지옥을 꺼내고 보니/ 네모난 작은 새장이어서/ 나는 앞발로 툭툭 쳐보며 굴려보며/ 베란다 철창에 쪼그려앉아 햇빛을 쪼이는데// 지옥은 참 작기도 하구나// (…)” (이윤설 ‘내 가슴에서 지옥을 꺼내고 보니’)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상처받지 않는 강심장은 없을 듯하다. 누구나 가슴 속에 ‘마음 지옥’ 하나씩은 품고 있지 않을까. 심리기획자 이명수는 <내 마음이 지옥일 때>를 통해 그 수렁에서 탈출하는 길이자 고통을 줄여줄 처방이 있다고 말한다.

그가 제시하는 “부작용 없는 치유제”는 ‘시’다. 심리치유 관련 일을 하면서 시를 치유적 관점에서 다시 보게 됐다는 그는 “시가 소외된 사람에게 뜨끈한 밥 한 공기 되진 못해도 그들을 기억하는 눈물 한 방울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며 그동안 애독한 시 중 82편을 골라 책에 담았다. 억울하고, 우울하고, 외롭고, 화가 나는 식의 ‘마음 지옥’에 빠지는 16가지 상황에 적절하게 녹아드는 시들이다.

WHITE DEER-또 다른 모습과 마주하다(2). 그림 고원태. 해냄 제공
WHITE DEER-또 다른 모습과 마주하다(2). 그림 고원태. 해냄 제공
각 시엔 지지와 공감을 담은 메시지를 짧게 곁들인 ‘처방전’을 썼다. 가령 이런 식이다. 앞서 소개한 이윤설 시인의 시에 덧붙인 글이다. “막상 꺼내 놓고 보면 별거 아녜요. 그까이 꺼, 마음 속 지옥. 그런데 그 안에 있을 땐 거기가 작은 새장이 아니라 망망대해인 게 문제죠. (…) 지금 내가 갇혀 있는 지옥이 특별한 게 아니라 전국 편의점 숫자만큼 흔하다는 걸,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 훨씬 수월해질 건데 그게 쉽지 않아요. 사는 일, 참.”

저자는 시를 읽길 권하면서 “징징거려도 된다”고 말한다. 시를 읽는 것이 ‘삼키는’ 행위라면 징징거리는 일은 ‘뱉는’ 행위라 볼 수 있다. 심한 몸살을 앓을 때 끙끙 신음소리마저 내지 못하면 더 아픈 것처럼 “징징거린다는 것은 자기의 약함이나 감정의 표출”이라고 말한다. “마음이 지옥일 만큼 상처를 입었을 때 상처는 고름이고, 감정 토로는 그 고름을 빼내는 과정”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저자는 마음 지옥에 빠지지 않는 예방법도 소개한다. 먼저 과도한 ‘자기 탓하기’를 멈추라고 말한다. 살다보면 그저 내 탓, 그저 세상 탓인 경우는 없다. “얼핏 도덕적 성찰로 보이지만 이는 가장 손쉽고 게으른 분석”이라면서 어떤 순간에도 ‘자기 공감’과 지지를 잃지 말 것을 당부한다. 이와 함께 일어설 수 없을 땐 억지로 일어서려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꺾였을 때는 더 걸으면 안 될 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절대적으로 괜찮은 존재임을 잊지 말고 충분히 쉬며 다시 걸으라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건 공감의 동지를 두는 거다. 맞장구쳐주고 함께 울어주고 화내줄 수 있는 ‘편파적인 내 편’을 뜻한다. 저자는 나에게 또는 누군가에게 전적으로 공감해 줄 “‘꼭 한 사람’이 되어주는 일은 언제나 옳다”고 말한다. 이 책은 그의 ‘꼭 한 사람’인 정신과전문의 정혜신이 영감을 주었다. 두 사람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를 위한 심리치유공간 ‘와락’,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의 공간 ‘치유공간 이웃’을 열고 함께 활동해왔다.

책장을 덮고 나니 말의 성찬만 넘치는 어떤 힐링책들보다 위로가 된다. 읽고 나서도 허무하지 않으니, 시의 치유력은 역시나 힘이 세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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