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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소꿉놀이·병원놀이로 풀어낸 ‘연애’

등록 2017-02-16 19:31수정 2017-02-16 20:05

‘나의 작은 인형상자’ ‘먼지아이’로
볼로냐 라가치상 받은 정유미 작가

아이들 놀이 통해 연애과정 은유한
애니메이션 ‘연애놀이’ 그림책 출간
<연애놀이>에서 목 뒷덜미를 찌른 손가락을 맞추는 ‘손가락 맞추기’ 놀이를 하는 남녀. 컬처플랫폼 제공
<연애놀이>에서 목 뒷덜미를 찌른 손가락을 맞추는 ‘손가락 맞추기’ 놀이를 하는 남녀. 컬처플랫폼 제공
연애놀이
정유미 글·그림/컬쳐플랫폼·1만5000원

세계 4대 애니메이션 영화제로 꼽히는 ‘자그레브 페스티벌’에서 2014년 그랑프리를 받은 애니메이션 <연애놀이>가 같은 제목의 그림책으로 출간됐다. <먼지아이>(2012) <나의 작은 인형 상자>(2015)를 냈던 정유미 작가(36)의 신간이다. 2014년과 2015년 연이어 정 작가에게 ‘그림책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볼로냐 라가치상을 안긴 이 두 작품 역시 애니메이션이 원작이다. 2013년 15분짜리로 먼저 선보인 애니메이션 <연애놀이>는 세계 80여개 영화제에서 상영됐고, 자그레브 페스티벌 그랑프리를 포함해 10여개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이 그림책은 ‘여성 성장 3부작’의 완결편이다. 가족으로부터의 독립을 그린 <내 작은 인형 상자>, 혼자 생활하는 자신과의 마주보기를 다룬 <먼지아이>에 이어 어른이 된 남녀의 성숙한 관계맺기를 그린다.

<연애놀이>는 연애 과정에서 겪는 감정들을 아이들의 놀이에 비유한 것이 특징이다. 남자와 함께 길을 걷던 여자가 돌멩이를 줍더니 땅에 사각형을 그린다. 구두를 벗은 여자가 그 안으로 들어가 앉자 남자도 따라 앉는다. 여자는 손가방에서 찻잔과 찻주전자를 꺼낸다. 그리고 모래를 손으로 모아 주전자에 담더니 커피인 양 남자의 찻잔에 따라준다. 나뭇잎을 얹은 돌멩이를 조각케이크인 양 건네기도 한다. ‘소꿉놀이’에 남자도 동참한다. 차를 마시고 케이크를 먹는 시늉을 한다. 두 사람의 놀이는 ‘종이접기’ ‘눈 가리고 과자 먹기’ ‘숨바꼭질’ ‘병원놀이’ ‘시체놀이’ 등으로 이어진다.

<연애놀이>에서 ‘소꿉놀이’를 하는 남녀. 컬처플랫폼 제공
<연애놀이>에서 ‘소꿉놀이’를 하는 남녀. 컬처플랫폼 제공
남녀는 사각형 안에서 규칙에 따라 놀이를 즐기지만 이내 곧 위기를 맞는다. 연애 초창기처럼 알콩달콩 시작된 ‘소꿉놀이’가 끝나고 여자는 혼자 ‘종이꽃 접기’에만 몰두하는 남자의 무신경함에 상처받는다. 상대방을 밀거나 당겨 넘어뜨리는 ‘손목 잡고 당기기’ 놀이는 연애과정의 ‘밀당’(밀고 당기기) 같다. 놀이가 계속되면서 쌓인 감정의 찌꺼기들은 연인 사이에 균열을 낸다. 남자는 놀이의 규칙과 결과에 집중하고, 여자는 과정을 중시한다. 목 뒷덜미를 찌른 손가락을 못 맞추면 벌칙을 주는 ‘손가락 맞추기’에서 여지없이 딱밤을 때리는 남자와 달리 여자는 입맞춤을 한다. ‘눈 가리고 과자 먹기’에서 여자는 볼에 닿은 과자를 남자와 함께 먹으려 하지만 남자는 혼자 먹는다. 약을 처방해도 계속 우는 여자의 마음을(‘병원놀이’) 알 길 없는 남자는 관계 회복을 포기한 듯 ‘시체놀이’를 한다. 혼자서 감정을 처리하지 못해 연인에게 기대는 모습을 보이던 여자의 내적 성장은 이때 이뤄진다.

정유미 작가는 현재 고향인 부산에서 거주하며 작업중이다. 지난 14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정 작가는 “놀이도 규칙이 있는데, 하다 보면 사소한 감정이 쌓이고 갈등이 일어난다. 남녀관계에서 감정의 불일치를 겪는 연애과정이 놀이에 비유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작품을 만들던 당시의 내 경험과 느낌을 담아 힘든 시기를 거쳐 성숙해가는 남녀의 관계를 솔직히 보여주고자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낡고 오래된, 아날로그적인 것을 좋아한다”는 작가는 남녀주인공을 70, 80년대 복고 스타일로 그렸다. 기존 작품처럼 우울한 흑백톤의 연필 드로잉은 섬세하고 간결하다 못해 고요함마저 느껴진다. 정 작가는 “낡고 오래된 정서가 느껴지는 흑백 세밀화는 사실적으로 묘사해도 초현실적인 느낌이 있어 마음에 든다”면서 “스토리를 편집하고 그림의 밀도를 높이고 싶어 선택한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차기작으로 여자 주인공이 목욕하는 과정에서 유년시절 자기를 대면하는 이야기를 작업하고 있다는 정 작가는 “그림을 하면서 겪은 내적인 갈등들이 늘 작품으로 나오는데 살면서 주제는 다양해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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