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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트럼프 당선 뒤 미국 떠난 소잉카의 ‘아프리카’

등록 2017-02-02 18:58수정 2017-02-03 14:21

오브 아프리카
월레 소잉카 지음, 왕은철 옮김/삼천리·1만6000원

“아프리카의 문호 소잉카, 트럼프의 미국 떠났다”

지난해 12월 초, 국내외 언론들은 일제히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월레 소잉카(82)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에 반발해 미국 영주권을 포기하고 고국인 나이지리아로 돌아갔다고 보도했다. 인종차별 발언과 반이민 공약을 내세운 트럼프를 줄곧 비판해왔던 소잉카는 “트럼프가 당선되면 영주권을 찢고 출국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1986년 아프리카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잉카는 희곡 <사자와 보석> <숲의 춤>, 소설 <해설자들> 등의 작품을 썼다. 군부 정권의 정치 탄압을 피해 1994년 미국으로 망명했던 그가 트럼프에게 날선 비판을 해온 건 아마도 트럼프의 배타주의가 얼마나 위험한지 그의 뿌리가 있는 아프리카를 통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월레 소잉카. 삼천리 제공
월레 소잉카. 삼천리 제공
오랫동안 제국주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받아온 아프리카는 피해자였을 뿐 패권적인 위협이 된 적이 없었다. 식민주의 시대 아프리카인들은 백인들의 노예가 되었고, 그 이후에는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정치·종교 지도자들에 맞서 싸우는 투쟁을 계속했다. 소잉카는 인문에세이 <오브 아프리카>에서 이런 아프리카의 과거와 현재를 직시한다.

소잉카는 먼저 아프리카가 제국주의 열강들에 의해 ‘허구화’ 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헤로도토스, 셰익스피어 등의 역사가·대문호들은 물론이고 알베르트 슈바이처 같은 학자들도 “흑인들을 구원해줄 유일한 존재는 우월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 곧 백인들에 의한 통치”라는 얘기를 “학문적인 견해로 세련되게 만들었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소잉카는 모든 것을 유럽 식민주의자들의 탓으로만 돌리지 않는다. 노예무역 같은 비극적 역사에서 아프리카인들이 때로는 적극적 공모자였음도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는 “형식적인 의미에서조차 노예제도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없어진 것이 아니”라면서 세네갈의 토착민 추방, 모리타니 민간인 학살 등에서 여전히 ‘주인과 노예식 대결’을 발견할 수 있다고 밝힌다. 소잉카는 미국 터스키기 매독 생체실험 사건,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과 함께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아프리카 대륙의 제노사이드(대량학살)도 함께 기억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한편으로 ‘네그리튀드(흑인 주체성) 운동’에 희망을 걸어보기도 한다.

소잉카는 책의 마무리에서 아프리카 토착종교인 ‘오리사교’가 가진 지혜와 타협, 공존의 정신을 소개한다. 종교가 인류의 화합보다 끔찍한 갈등과 폭력을 부르기도 하는 오늘날, 공동체 철학을 담은 오리사교가 여러 신앙들의 조화를 이끌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점도 내비친다. 그는 “희망하건대 아프리카가 이질적인 이원론의 피해자 역할에 머물러 있지 않았으면 싶다”면서 조정자의 역할이 아프리카에 부여됐으면 하는 바람을 절절하게 담았다.

<오브 아프리카>는 평소 아프리카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면 이해가 쉽지 않은 책이다. 옮긴이 왕은철 전북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가 후기에서 번역의 어려움을 밝혔듯 수많은 아프리카의 문학가·사상가들은 이름조차 생소하고, 소잉카의 문장 또한 모호한 부분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이 책은 아프리카의 맨살을 드러내보이는 한편 아프리카에 대한 편향된 담론을 걷어차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간을 투자해 읽어볼 만하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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