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의 역사
질리언 라일리 지음, 박성은 옮김/푸른지식·2만5000원
음식패설
김정희 지음/앤길·1만3000원
먹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자 큰 즐거움이다. 인류는 씨앗을 뿌려 농작물을 키웠고, 동물을 길러냈으며, 불을 사용해 다채로운 음식을 만들어냈다. 설탕·커피·감자·향신료 등 먹거리를 둘러싼 약탈과 전쟁은 민족과 국가의 운명을 바꿨다. 어쩌면 세계사를 가장 쉽고 맛있게 공부하는 방법은 음식의 역사를 이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미식의 역사>는 고대부터 르네상스까지 미식의 역사를 예술작품을 통해 들여다본 책이다. 구석기시대 동굴벽화, 메소포타미아 석판, 이집트 피라미드, 중세시대 프레스코, 르네상스시대 정물화 등을 단서로 시대별 음식과 재료를 살핀다. 예술 작품에 묘사된 부엌, 식탁, 연회 풍경을 통해 본 당대 식문화도 소개한다.
중세시대 식탁엔 화려함과 검소함이 공존했다. 종교적이거나 세속적인 작품 가릴 것 없이 많은 미술품에 음식이 소재로 등장하며, 이를 통해 중세인들이 만찬으로 일상의 순간을 기념해온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유럽인들은 고기를 선호했다. 가축 중 돼지는 사랑과 멸시를 동시에 받았다. 양이나 소보다 불결한 동물로 취급받았으나 식용부위가 다양해 중요한 동물로 여겨졌다. 채소를 생으로 먹으면 위험하다 여겼기에 샐러드는 가난한 서민 음식으로 홀대받다가 르네상스시대가 되어서야 귀족의 식탁에 올랐다.
의학서 <중세의 건강서적> 속 삽화. 푸른지식 제공
르네상스시대 예술작품에는 음식 재료와 조리법에 관한 이야기가 풍성하다. 이탈리아 음식문화사를 연구한 저자는 각종 채소와 과일이 그려진 정물화에 기대 “음식이 부와 권력을 과시하는 수단이기도 했다”고 설명한다. 화려한 은접시를 더럽히는 레몬, 비단 위 기울어진 접시에 담긴 가재는 부에 대한 노골적인 과시이자 도덕적 타락을 의미했다. 이렇게 <미식의 역사>는 총 180점의 예술작품을 담아 미술 도록을 보는 듯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미식의 역사라고 했지만 사실은 미술사 속의 음식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에 가깝다. 음식 지식에 미술 감상 기회까지 제공하니 고급 교양서 취향을 가진 독자들은 제맛을 느낄 수 있겠다.
미학적 관점이 아닌 음식에 관한 적나라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음식패설>이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다. ‘사랑과 음식’ ‘금지된 열매와 음식’ ‘신화 속 음식’ ‘식품과 정치’ 등 총 6가지 주제로 감자, 복숭아, 캐비어 등 다양한 음식 이야기를 소개한다.
석류를 예로 들어볼까.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라는 광고 카피처럼 동서양의 대표 미인인 양귀비와 클레오파트라는 모두 석류를 좋아했다. 열매 안을 가득 채운 알갱이가 다산을 상징해 여인들의 생활용품도 석류 모양을 자주 본떴다. 조선시대 여성들은 석류잠을 꽂고, 석류모양의 향낭을 찼다. 아랍인들은 석류가 영원한 삶을 준다고 믿어 사람이 죽으면 석류를 함께 넣어 묻었다. 그리스인들은 행운을 비는 의미로 결혼식 때 석류를 까기도 했다.
다른 음식 서적과 차별성을 부각하려고 이 책에는 일부러 그림과 사진을 최대한 줄였다고 한다. 책에 등장하는 사진은 반으로 잘린 토마토 단면이 유일하다. 다소 어색해 보일 정도로 선명한 이 사진이 불쑥 끼어든 배경이 있다. 바로 2012년에 있었던 ‘토마토 해프닝’을 소개하기 위함이다. 당시 이슬람의 한 극보수단체는 페이스북에서 토마토를 금한다고 발표했다. 토마토를 횡단면으로 잘랐을 때 나오는 십자가 모양이 기독교를 칭송하는 것이므로 토마토를 먹어선 안 된다는 황당한 논리였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