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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러시아혁명 100년, 다시 만나는 트로츠키

등록 2017-01-26 17:59수정 2017-01-26 20:13

아이작 도이처 평전 3번째 재출간
그의 국제주의·프롤레타리아 민주
사회주의의 또 다른 가능성이었나
무장한 예언자 트로츠키 1879-1921
비무장의 예언자 트로츠키 1921-1929
추방된 예언자 트로츠키 1929-1940
아이작 도이처 지음, 김종철·한지영·이주명 옮김/시대의창·각 권 2만5000~2만8000원

러시아혁명 100주년을 맞는 해다. 혁명 지도자였으나 추방돼 스탈린 독재와 소련 체제의 타락에 끝까지 맞서 싸우다가 암살당한 레온 트로츠키의 생애를 다룬 ‘트로츠키 평전 3부작’ 한국어판이 매우 적절한 시기에 다시 출간됐다. 아이작 도이처의 <무장한 예언자 트로츠키>(김종철 옮김) <비무장의 예언자 트로츠키>(한지영 옮김) <추방된 예언자 트로츠키>(이주명 옮김). 3권 합쳐 21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 트로츠키의 생애와 러시아혁명의 역사와 인물 군상, 트로츠키와 혁명 유산의 의미에 대한 묵직한 질문들을 담았다.

우크라이나에서 부유한 유대인 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트로츠키는 레닌과 함께 러시아혁명을 성공시키고 적군을 창건해 내전을 승리로 이끈 뛰어난 조직가이자 사상가, 전략가였다. 하지만, 레닌 사후 스탈린과의 당내 권력다툼에서 패배해 혁명의 배반자, 반혁명분자로 날조된 채 추방당했다. 터키·프랑스·노르웨이·멕시코 등으로 쫓겨다니고 스탈린의 숙청과 암살로 가족과 측근들이 잇따라 죽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혁명적 국제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란 원칙을 붙잡고 스탈린과 끝까지 싸웠다. 스탈린은 그를 침묵시키려 했지만 그는 <나의 생애> <배반당한 혁명> 등의 저서를 통해, 제4 인터내셔널을 비롯한 국제사회주의 운동을 통해 사회주의의 다른 길을 보여주려 했다. 1940년 8월 스탈린이 보낸 자객에 의해 등산용 도끼로 암살당할 때까지.

말년의 레온 트로츠키.
말년의 레온 트로츠키.
저자인 도이처 자신이 폴란드 공산당에서 활동하다 트로츠키 노선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당에서 제명당하고 영국으로 망명한 트로츠키의 동시대인이다. 그가 하버드대 트로츠키 문서보관소 등의 방대한 자료, 비밀문서, 관련 인물들과의 인터뷰 등을 통해 써내려간 이 책은 ‘스탈린이 아닌 트로츠키식 사회주의 노선이 실현되었다면, 역사는 다르게 전개될 수 있었을까?’란 질문을 품고 있을 수밖에 없다.

트로츠키는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 교리가 마르크스주의를 국가사회주의적으로 왜곡한 것이며, 국가적 자만심과 소련 관료집단의 오만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았다. 또, 과도하게 관료적인 공산당 조직의 경직성을 씻어내고 ‘민주적 집중주의’를 복원시키려 했다. 스탈린 치하에서 혁명의 유산이 가혹한 독재와 숙청, 공포로 지탱하는 국가자본주의로 변질되고, 결국 특권층의 부패와 타락, 경제 위기로 얼룩진 채 소련과 사회주의권 붕괴로 이어지는 동안 ‘트로츠키주의’는 반혁명주의 낙인이자 금기였다. 이제 스탈린이 훼손한 혁명 유산을 구원할 민주적 사회주의의 가능성을 트로츠키에서 발견할 수 있을까?

1991년 소련 붕괴에 이어 위풍당당 세계를 휩쓴 신자유주의가 극심한 불평등의 고통과 자본주의 자체의 위기를 몰고 온 지금 러시아혁명을 되돌아보는 것은 더욱 복잡한 질문과 고민들을 던진다. 불평등에 대한 분노를 교묘하게 이용해 극우적 정책들을 거침없이 밀어붙이고 있는 트럼프의 미국, 급진적 시장화를 통해 강대국으로 부상한 뒤 중화주의 색채를 강화하고 있는 중국, 강한 러시아 부활을 외치며 스탈린을 롤모델로 삼고 있는 푸틴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대안을 만들어내야 할까?

러시아 내전 시기 트로츠키가 전선에서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다.
러시아 내전 시기 트로츠키가 전선에서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다.
트로츠키는 역사의 진보란 맨발로 힘겹게 두어 걸음 나아간 뒤 다시 뒷걸음질하면서도 끝내 성지를 향해 다가가는 순례자들과 같다며 끝까지 좌절을 거부했다. 유언장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의식을 깨친 이래 나는 43년을 혁명가로 살아왔다. 만약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한다 하더라도, 이런저런 오류는 피하려고 하겠지만 내 삶의 큰 줄기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인류의 공산주의적 미래에 대한 내 신념은 조금도 식지 않았다. (…) 나는 담장 아래로 밝은 녹색의 풀들, 담장 위로 맑고 푸른 하늘, 그리고 도처에 반짝이는 햇빛을 본다. 인생은 아름답다. 미래 세대는 모든 악과 억압, 폭력을 씻어내고 이 아름다운 인생을 마음껏 향유하게 하자.”

한국어판은 군사독재 서슬이 퍼렇던 1985년 처음 세상에 나왔다. 리영희 선생의 추천으로 <동아일보> 해직기자 김종철이 번역을 맡았지만, 신홍범 두레출판사 사장은 번역자를 탄압에서 보호하려고 이름을 숨긴 채 책을 내놨다. 2005년 출판사 필맥이 번역자의 이름을 살려 재출간했지만 계약만료로 책이 사라지게 된 것을 안타깝게 여긴 시대의창이 도이처의 유족과 교섭해 책을 되살렸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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