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처음으로 한국 독자들을 만난 리처드 도킨스 교수는 “지금 인류의 진화는 문화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인터파크 제공
“인류의 진화는 생물학보다 문화적·기술적인 변화에 더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이기적 유전자> <만들어진 신>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76) 영국 옥스퍼드대 뉴칼리지 명예교수가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해 21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독자 300명과 만났다. 이번 행사는 인터파크도서와 카오스(KAOS)재단이 공동으로 기획했다.
도킨스 교수는 단상에 올라 ‘진화의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인류가 공룡과 달리, 발전된 기술을 갖고 있기에 소행성 충돌로 멸종되는 일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인류의 진화는 앞으로 생물학적인 것보다는 문화적·기술적 문제에 더 지배적인 영향을 받게 될 것이고 이것이 부정적인 측면도 동시에 갖고 있다”고 내다봤다.
“로봇이나 인공지능이 인간의 기능을 대체하지 않을까 하는 시각이 있습니다. 스티븐 호킹 같은 학자들도 인류가 정교한 인공지능을 통해 자기 파괴의 씨를 뿌리고 스스로를 위험에 빠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한 바 있지요.”
하지만 도킨스 교수는 인류의 미래를 극단적인 파국과 단순하게 연결시키지만은 않았다. “마틴 루서 킹은 역사의 바퀴는 긍정적으로 굴러간다고 했고, 스티븐 핑커도 인류는 일반적으로 옳은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했습니다. 노예제 폐지, 여성 참정권 등이 그 예죠. 저도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인류 진화의 양상이나 경로에 대해서는 과거와 달라질 것이라는 흥미로운 주장을 펼쳤다. 인류의 두뇌가 점점 더 커질 가능성이 없다고 본 것이 한 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처럼 큰 머리를 가진 이는 앞으로 더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면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부터 현재까지 인류가 300만년 동안 계속 진화하면서 뇌의 크기가 커졌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윈의 자연선택과 관계없이 지금 인류의 결혼과 출산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생물학보다 문화적 요인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두 종 이상으로 분화해 진화할 가능성은 있을까. 도킨스 교수는 이렇게 서로 다른 진화를 하려면 지리적으로 격리될 필요가 있는데 다양한 인종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지금은 인류가 다르게 진화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인류가 혹시 화성이나 다른 행성을 식민화한다면 사는 환경에 따라 신체구조 변화를 겪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지구보다 중력이 약한 화성에서는 인간의 다리가 길고 가늘어질 수 있고, 중력이 더 강한 목성에서는 쥐가 더 커질 수도 있겠죠.”
청중들의 질문을 받는 질의응답 시간도 도킨스 교수는 시종일관 유쾌했다. 언어의 다양성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공용어인 영어는 ‘게으른 언어’”라며 다양한 언어가 존중됐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또 인류의 재난 문제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의사 결정을 해 재난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과학자들이 최종 정책 결정에서 배제되는 문제를 꼬집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도발적인 저작인 <만들어진 신>과 관련해 종교나 무신론 등에 대한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강연을 마무리하면서 그는 “과학을 통해 우주와 세상을 이해하는 인간인 우리는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며 아인슈타인의 경구를 인용해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킨스 교수는 25일 고려대에서 진화심리학자인 장대익 서울대학교 교수와 ‘나의 과학 인생’이라는 주제로 대담을 펼칠 예정이다.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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