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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다윈을 놀라게 한 과학자의 오지탐험기

등록 2017-01-12 19:18수정 2017-01-16 09:47

말레이 제도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 지음, 노승영 옮김/지오북·3만6000원

2013년 1월, 영국 런던박물관. 진화론 창시자인 찰스 다윈의 조각상 옆에 초상화 하나가 걸린다.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 관련 논문을 먼저 쓰고도 다윈에게 밀려 연구 업적이 후대에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던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1823~1913)의 초상이었다. 서거 100년이 지나서야 자연사학자이자 지리학자이자 인류학자이자 진화론자였던 월리스를 재평가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었고, 그의 저서와 생애는 다시 큰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한국은 그보다 더 늦은 올해 처음으로 월리스의 책이 출간됐다. 자연선택과 진화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대표 저서 <말레이 제도>다.

왕립학회 회원으로 선출된 지 2년 후의 월리스(1895년). 지오북 제공
왕립학회 회원으로 선출된 지 2년 후의 월리스(1895년). 지오북 제공
말레이 제도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지역에 걸쳐 있는 수많은 섬들로 이뤄진 세계 최대의 군도다. 책에는 월리스가 1854년부터 8년간 말레이 제도를 탐사하면서 관찰한 각 섬의 지질과 동식물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강렬한 색깔의 깃털을 가진 극락조, 발가락 사이 물갈퀴를 펼치고 허공을 나는 월리스날개구리, 몸통 자체가 줄기이자 뿌리인 기생목 무화과나무 등 다양한 동식물들과 그림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튀어나온다. 서구의 파괴적 손길이 미처 닿기 전, 말레이 제도에서 월리스는 12만 점이 넘는 동물 표본을 채집했다. 이중 월리스날개구리, 월리스흰깃발극락조처럼 그의 이름 ‘월리스’를 붙인 새로운 종만 해도 100종이 넘는다.

말레이 제도를 탐사하면서 그는 생물지리학 역사에 기록될 여러 공헌을 남겼다. 발리섬에서 봤던 생물들을, 불과 30㎞ 떨어진 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는 롬복섬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다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아시아 대륙과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간 동물군의 차이를 만드는 경계선이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린 중요한 발견이었다. 훗날 이 경계선은 ‘월리스 선’이라고 이름 붙었다.

이 책의 또 다른 묘미는 원주민을 야만인, 미개인으로 일컫던 19세기 서구의 지식인이 말레이 제도 사람들의 삶을 보면서 이상적인 사회를 발견하는 부분에 있다. 월리스는 “이들은 법도 없고 법정도 없으나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한다. 이웃의 권리를 사려깊게 존중하며 그러한 권리를 침해하는 일은 거의 또는 결코 없다”며 매우 낮은 문명 단계에 있는 원주민들이 유토피아적인 사회 상태에 접근해있다는 점을 보곤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한편으로 “우리는 지적 측면에서 야만적 단계를 훌쩍 뛰어넘어 진보했음에도 그에 부합하는 도덕적 진보는 이루지 못했다”며 문명의 야만성을 반성하기도 한다. 십대 시절, 로버트 오언의 유토피아 이상주의를 접했던 ‘흙수저’ 출신 학자가 진화연구뿐 아니라 돈을 벌려고 말레이 제도까지 가 동물 수집 표본을 하면서 느꼈을 비애가 짐작된다.

1869년에 출간된 <말레이 제도>는 그동안 여러번 판을 바꿨다. 이 책은 1890년에 찍은 제10판의 완역본이다. 책은 월리스가 채집한 각종 표본을 바탕으로 당대 삽화가들이 그린 목판화 삽화가 실려 이해를 돕는다. 진화론의 체계를 미처 완성하지 못한 다윈이 미리 읽은 뒤 자신의 연구 발표를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는 월리스의 논문, ‘변종이 원형에서 끝없이 멀어지는 경향에 대하여’도 함께 수록했다. 각 섬의 방대한 어휘를 실은 부록까지 총 848쪽. 쉽게 도전할 엄두가 안 나는 두께의 책이지만 호기심과 모험심이 가득한 문장들 덕에 책장을 술술 넘길 수 있다. 다만 미지의 원시림 탐구서가 내내 흥미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채집을 위해 오랑우탄을 비롯한 동물들에게 서슴없이 총을 겨누는 월리스의 냉혹한 모습은 불편하기도 하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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