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블랙리스트가 세종도서 선정때 영향 끼친 사실 확인
한강 ‘소년이 온다’, 이외수·공지영 작품 등 무더기 탈락
세월호 책 낸 창비·문학동네 등 정부 지원금 줄인 정황도
한강 ‘소년이 온다’, 이외수·공지영 작품 등 무더기 탈락
세월호 책 낸 창비·문학동네 등 정부 지원금 줄인 정황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진흥원)이 주관하는 세종도서(옛 문화부 우수도서) 선정·보급 사업에 청와대가 직접 개입해 세월호 참사나 5·18 등 근현대사를 다룬 도서들의 ‘사상검증’을 하고 특정 출판사에 불이익을 줬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관련기사: [단독] 블랙리스트 만든 정부, 한강 소설도 ‘사상검증’ 정황) 우수문예지 발간지원사업도 청와대 지시로 특정 문예지를 배제했다는 확실한 정황이 포착됐다.(▶관련기사: [단독] “2014년 우수문예지 지원심사 때 ‘블랙리스트’ 이미 작동”)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전·현직 문체부 직원들의 진술과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진보성향의 특정 작가 및 출판사 세종도서 선정 배제에 영향을 끼친 사실을 10일 확인했다. 블랙리스트는 2014년 하반기부터 청와대 정무수석실을 통해 문체부로 전달돼 이후 문화계 각종 지원사업에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 2014년 세종도서 심사 자료를 보면, 문학 분야 최종심에 오른 소설 132권 중 40권이 마지막에 석연찮은 이유로 ‘무더기 탈락’했다. 이 3차 심사에서 제외된 작품은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한강·창비)와 이외수·공지영 작가의 작품 등이 포함됐다. 특히 <소년이…>는 당시 진흥원에서 줄을 쳐가며 꼼꼼하게 검열했다는 진술이 나왔고, 작가 한강은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의혹이 최근 사실로 확인되기도 했다.(▶관련기사: [단독] ‘맨부커상’ 한강,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공식 확인)
특검팀은 청와대가 개입해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책을 낸 출판사 창비와 문학동네 등에 정부 지원금을 줄인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창비는 <금요일엔 돌아오렴: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을, 문학동네는 <눈먼 자들의 국가>(김애란 외)를 출간했다. 같은 해 세종도서에 선정된 이 출판사들의 책은 전년도 선정작의 5분의 1에 그치는 대여섯권에 불과했다. 심사 때 특정 작가·출판사의 도서를 검열하고 사상검증한 사실이 드러나자 당시 진흥원은 “세월호 관련 책을 선정에서 제외하는 일은 절대 없었다”, “도서의 사상적 편향성을 검토했다면 심사위원의 소신”이라고 주장했지만 특검이 이번에 밝혀낸 정황은 진흥원의 주장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문체부와 함께 진흥원의 책임이 대두되는 까닭이다.
10일 전국언론노동조합은 논평을 내고 “대한민국 정부의 출판 지원정책은 검열과 통제, 농단 그 자체였음이 밝혀졌다”면서 “특검은 출판계 검열, 통제와 지원 삭감을 직접 지시하고 보고 받은 몸통 박근혜와 김기춘을 철저히 수사해 엄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특검팀은 9일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 등에 관여한 혐의(직권남용)로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신동철 전 대통령정무비서관,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정관주 전 문체부 차관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전 장관과 정 전 차관은 국회 국정조사특위 청문회에서 “블랙리스트를 본 적 없다”고 위증(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한 혐의도 적용했다. 이규철 특검 대변인(특검보)은 “고위 공무원들이 문화계 지원 배제 명단을 작성해 실행한 것이 국민들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한 것으로 판단하고 작성·시행 관련자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을 예정”이라 밝혔다.
김미영 김정필 기자 instyle@hani.co.kr
작가 한강이 지난 5월24일 오전 서울 동교동의 한 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소설 <채식주의자>와 새 소설 <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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