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의 장르문학 읽기
토니와 수잔
오스틴 라이트 지음, 박산호 옮김/오픈하우스(2016)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오르한 파무크의 <새로운 인생>(이난아 옮김, 민음사)의 첫 문장이다. 이 문장을 떠올릴 때마다 미묘한 진동이 몸을 훑고 가는 기분이 든다. 어떻게 하나의 이야기가 우리의 인생을 바꾼다는 걸까? 수없이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인생이 한권의 책으로 바뀌었다고 간증하지만, 어떤 과정을 거쳐 일어나는지는 대체로 신비의 장막 뒤에 가려져 있다. <토니와 수잔>의 주인공 수잔 모로는 어느 날 한권의 소설 원고를 받는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그녀의 인생이 바뀌기 직전까지 몰아간다.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제목의 소설을 써서 보낸 사람은 25년 전 헤어진 전남편 에드워드이다. 수잔과 에드워드가 헤어진 사유는 표면적으로는 작가적 재능이 없는 에드워드가 소설 집필에만 집착하며 부부의 생활을 내버렸다는 것이었다. 불편한 마음을 안고 수잔은 원고를 펴지만 곧 그 내용에 빠져든다. ‘녹터널 애니멀스’의 주인공은 40대 수학 교수인 토니 헤이스팅스다. 그는 아내인 로라, 딸 헬렌과 함께 메인주의 여름 별장으로 향하다, 고속도로 위에서 남자 셋이 탄 차와 시비가 붙는다. 처음에는 사소한 신경전이었다가 차츰 커다란 갈등으로 번져가고,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급회전한다. 평온하던 중산층의 삶이 별안간 닥쳐온 갑작스러운 폭력으로 산산이 부서진다. <토니와 수잔>은 1993년 출간되었고, 작가인 오스틴 라이트도 2003년에 사망하였다. 뒤늦게 이 책이 조명을 받는 것은 톰 포드가 만든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의 원작이며, 그 영화가 2016년 베네치아(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는 이해하기 쉬운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도 이 책은 텍스트만으로도 3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을 만큼 충분히 매혹적이며, 에드워드의 원고에 빠져든 수잔처럼 독자들도 이 소설의 첫 장부터 빠져들게 된다. 영화에서는 배우 제이크 질런홀이 토니와 에드워드를 동시에 연기함으로써 현실과 허구가 연결되지만, 이 소설은 제목인 <토니와 수잔>처럼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즉, 소설의 주인공과 그에 이입하는 독자. 수잔은 토니 헤이스팅스가 겪는 삶의 위기를 자신의 인생에 대입한다. 저명한 의사인 남편 아놀드, 그와의 사이에서 생긴 세명의 아이들, 안정된 생활. 에드워드와 헤어진 이후로 무사하고 성공적으로 살아왔다 자부했지만 불안과 위기가 그 아래 깔렸다는 것을 그저 눈감고 있었을 뿐이었다. 강렬하고 폭력적인 스릴러와 결혼을 깊게 고찰하는 가정 심리 드라마가 교차하는 가운데, <토니와 수잔>은 한편으로는 문학이란 무엇인가 이야기한다. 토니를 읽는 수잔을 읽는 우리. 소설 속 사건이 마치 물둘레처럼 퍼져나가 허구와 사실의 경계를 넘고 우리의 인생을 바꾼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에 균열을 만들고, 그 틈새로 나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이를 소설의 복수라고 해도 좋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구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니 이 소설의 제목을 ‘토니와 수잔과 나’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이 똑같은 사건에 전율하고, 타인의 심정을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느낀다. 이는 문학이 늘 환기해주는 인간의 잠재력이다. 상상을 통해서 서로의 삶에 연결할 수 있다는 것. 박현주 에세이스트, 번역가
오스틴 라이트 지음, 박산호 옮김/오픈하우스(2016) “어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오르한 파무크의 <새로운 인생>(이난아 옮김, 민음사)의 첫 문장이다. 이 문장을 떠올릴 때마다 미묘한 진동이 몸을 훑고 가는 기분이 든다. 어떻게 하나의 이야기가 우리의 인생을 바꾼다는 걸까? 수없이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인생이 한권의 책으로 바뀌었다고 간증하지만, 어떤 과정을 거쳐 일어나는지는 대체로 신비의 장막 뒤에 가려져 있다. <토니와 수잔>의 주인공 수잔 모로는 어느 날 한권의 소설 원고를 받는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그녀의 인생이 바뀌기 직전까지 몰아간다.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제목의 소설을 써서 보낸 사람은 25년 전 헤어진 전남편 에드워드이다. 수잔과 에드워드가 헤어진 사유는 표면적으로는 작가적 재능이 없는 에드워드가 소설 집필에만 집착하며 부부의 생활을 내버렸다는 것이었다. 불편한 마음을 안고 수잔은 원고를 펴지만 곧 그 내용에 빠져든다. ‘녹터널 애니멀스’의 주인공은 40대 수학 교수인 토니 헤이스팅스다. 그는 아내인 로라, 딸 헬렌과 함께 메인주의 여름 별장으로 향하다, 고속도로 위에서 남자 셋이 탄 차와 시비가 붙는다. 처음에는 사소한 신경전이었다가 차츰 커다란 갈등으로 번져가고,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급회전한다. 평온하던 중산층의 삶이 별안간 닥쳐온 갑작스러운 폭력으로 산산이 부서진다. <토니와 수잔>은 1993년 출간되었고, 작가인 오스틴 라이트도 2003년에 사망하였다. 뒤늦게 이 책이 조명을 받는 것은 톰 포드가 만든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의 원작이며, 그 영화가 2016년 베네치아(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다는 이해하기 쉬운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도 이 책은 텍스트만으로도 30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을 만큼 충분히 매혹적이며, 에드워드의 원고에 빠져든 수잔처럼 독자들도 이 소설의 첫 장부터 빠져들게 된다. 영화에서는 배우 제이크 질런홀이 토니와 에드워드를 동시에 연기함으로써 현실과 허구가 연결되지만, 이 소설은 제목인 <토니와 수잔>처럼 두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즉, 소설의 주인공과 그에 이입하는 독자. 수잔은 토니 헤이스팅스가 겪는 삶의 위기를 자신의 인생에 대입한다. 저명한 의사인 남편 아놀드, 그와의 사이에서 생긴 세명의 아이들, 안정된 생활. 에드워드와 헤어진 이후로 무사하고 성공적으로 살아왔다 자부했지만 불안과 위기가 그 아래 깔렸다는 것을 그저 눈감고 있었을 뿐이었다. 강렬하고 폭력적인 스릴러와 결혼을 깊게 고찰하는 가정 심리 드라마가 교차하는 가운데, <토니와 수잔>은 한편으로는 문학이란 무엇인가 이야기한다. 토니를 읽는 수잔을 읽는 우리. 소설 속 사건이 마치 물둘레처럼 퍼져나가 허구와 사실의 경계를 넘고 우리의 인생을 바꾼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에 균열을 만들고, 그 틈새로 나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본다. 이를 소설의 복수라고 해도 좋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구원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니 이 소설의 제목을 ‘토니와 수잔과 나’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이 똑같은 사건에 전율하고, 타인의 심정을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느낀다. 이는 문학이 늘 환기해주는 인간의 잠재력이다. 상상을 통해서 서로의 삶에 연결할 수 있다는 것. 박현주 에세이스트, 번역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