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거리
신문사 근처 공원을 찾았습니다. 가을 나무들 사이에서 명상하고 꿈꾸듯 잠시 거닐다 밖으로 나오는 순간, 공사장의 아스팔트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불과 몇초 전까지 낙엽 냄새에 취해 있었는데, 현실이 훅 눈앞에 다가오는 순간이었지요. 지금, 한가하게 산책이나 할 땐가.
이번 주에는 격문이 한권 나왔습니다. 68혁명의 신호탄을 올린 <비참한 대학 생활>(책세상)입니다. 이 소책자가 처음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에 뿌려진 건 딱 50년 전인 1966년 가을이었습니다. 낙엽을 밟으며 청춘들은 아름다운 정경에 넋을 놓아도 좋았겠지요. 하지만 이 글은 학생들에게 책을 덮고 기존 질서에 저항하며 축제와 같은 혁명에 나서도록 촉구합니다. 옮긴이(민유기 교수, 경희대 사학과)는 서문에서 현재 대학가에 쳐들어온 자본주의 시장 논리와 정부의 구조조정이 그때의 모습과 판박이로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수저계급론’이 설득력을 얻는 지금 한국 사회는 60년대 유럽과 다른 점도 많습니다. 출판면에 소개한 책 <사회학적 파상력>(문학동네)에서 지은이 김홍중 교수(서울대 사회학과)는 C. 라이트 밀스가 <사회학적 상상력>에서 전개한 낙관적 전망과 선을 긋습니다. 지금은 상상력을 발휘하는 꿈의 시대가 아니라, 꿈에서 깨어나는 가혹한 체험이 거듭되는 시대라는 것이지요. 지은이가 ‘생존주의 세대’라고 이름붙인 청년들이, 오죽하면 ‘이불 밖은 위험하다’며 우스갯소리를 할까요.
책은 질문합니다. “정의롭고 해방된 평등한 사회를 더 이상 꿈꾸지 않는 사회는 어떻게 여전히 사회일 수 있는가?” 이것이 나라인가, 이래도 시민인가, ‘비참한 국민 생활’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가. 의문이 잇따르는 요즘, 물론 여전히 책의 힘을 믿습니다만, 누군가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줄 때 책은 잠시 덮으셔도 좋겠습니다.
이유진 책지성팀장 fro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