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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11월 4일 한국어 연습장

등록 2005-11-03 21:49수정 2005-11-04 15:54

붉은 단풍이라야 곱다

붉다 : 빨갛다

[오늘의 연습문제]

다음 중 ‘붉다’가 어울리는 것에는 ○표, ‘빨갛다’가 어울리는 것에는 ∨표를 하시오.

단풍, 노을, 기운, 사상, 광장, 마음, 깃발, 딸기, 앵두, 고추, 장미, 포도주, 구두, 드레스, 연필, 크레파스, 페인트, 잉크


[풀이]

‘붉다’와 ‘빨갛다’는 비슷한 색깔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그 쓰임은 엄연히 다르다. 어원을 보면 불[火]에서 유래한 ‘붉다’가 ‘발갛다> 빨갛다’로 된 것이다. ‘붉다’에는 빨간색은 물론(붉다 ⊃ 빨갛다) 주황색, 분홍색, 자주색까지 들어가며, 심지어 노란색이나 갈색이 섞이기도 한다.

노을이나 단풍의 찬란한 빛을 ‘빨갛다’는 감당하지 못한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입말로 성장한 ‘빨갛다’가 자신을 낳아준 ‘붉다’를 제치고 일상적인 쓰임을 평정하다시피 해버린 까닭에, ‘붉다’는 점잖게 뒷전으로 물러나 거의 글말로만 쓰이게 되었다. 그래서 ‘붉은 신호등’보다 ‘빨간 신호등’이 우리 귀와 입에 더 익은 것이다.

그런데 ‘빨간 단풍잎’은 자연스러운데 ‘빨간 단풍’은 왜 어색한 것일까? 그것은 ‘붉다’가 대상 전체의 색깔을 나타내는 반면에 ‘빨갛다’는 개별적인 대상이나 어떤 사물의 부분을 묘사하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자면 ‘빨간 사과’는 ‘붉은 사과’라는 품종에 속하는 낱 사과이고, ‘빨갱이’는 ‘붉은 무리’라는 집단에 속하는 개인이다.

‘붉다’는 대상의 본래적인 속성을 나타내는 말이기에 비유적이고 상징적인 표현에 잘 어울린다. ‘붉은 사상’ ‘붉은 광장’ ‘붉은 깃발’ 그리고 ‘붉은 악마’ 등등. 이에 비해 ‘빨갛다’는 인공적으로 붉은 색깔을 부여한 물건에 잘 쓰인다. ‘붉다’와 달리 ‘빨갛다’는 말하는 이의 주관적인 느낌을 담고 있기 때문에, 농담(濃淡)의 정도도 표시할 수 있다. ‘새빨간 거짓말’은 의도적으로 날조된 거짓말이라는 뜻을 색깔을 통해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붉다’는 불과 관계가 있는 만큼, 의미상 열의 속성인 따뜻함까지 내포하고 있다. 태양이나 피, 심장, 뺨 등이 ‘붉다’와 잘 어울리는 이유는 모두 붉은빛을 띠면서도 때로 끓거나 달아오르거나 불타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일편단심’이 붉은 마음이 아니라면 어떻게 뜨거운 충정의 염을 담을 수 있겠는가.

빨강을 기본으로 삼되 다양한 색깔이 모여들고 섞이고 넘나들어 붉은빛 스펙트럼이 번져가는 단풍 색깔이야말로 자연이 베푸는 커다란 혜택이다. ‘빨간 단풍’이 아니라 ‘붉은 단풍’이라야 곱다. 아름다운 단풍을 보고 있자니 ‘붉다’의 다양성과 너그러움이 새삼 간절해진다.

[요약]

붉다: 붉은색 계통. 객관적. 집합적 대상. 열과 관계있음. 비유나 상징으로 잘 쓰임. 자연적.

빨갛다: 빨간색. 주관적. 개별적 대상. 열과 관계없음. 실제 사물의 구체적인 색깔을 가리킴. 인공적.

김경원/ 문학박사·한국근대문학

[답]

○표: 단풍, 노을, 기운, 포도주, 사상, 광장, 마음, 깃발

∨표: 딸기, 앵두, 고추, 장미, 구두, 드레스, 연필, 크레파스, 페인트, 잉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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