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위대한 창조자들의 역사
이바르 리스너 지음.
김동수 옮김. 살림 펴냄. 3만4000원
이바르 리스너 지음.
김동수 옮김. 살림 펴냄. 3만4000원
잠깐독서
역사책은 쉴새 없이 쏟아진다. 여기 한 권을 더 보탠다. 라트비아공화국에서 태어나 독일과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영국 연방과 동아시아 등을 17년간 여행한, 천생 ‘유럽인’이 쓴 책이다. ‘우리는 서양문화 공동체다(Wir sind das Abendlad)’가 이 책의 원래 제목이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7천년의 서양 역사를 살폈다.
지은이 이바르 리스너는 그 역사를 쓰기 위해, 서양사의 주류를 이루는 큰 강이 아니라 주변을 끼고 도는 샛강에 자리 잡았다. 이 책이 지닌 독특한 매력의 정체다.
이집트보다 메소포타미아에 더 주목하고, 예수가 아닌 바울과 마리아의 삶에 더 귀 기울이고, 알렉산더가 아닌 필리포스에 더 애정을 쏟는 일이 그래서 가능했다. 이런 역사 서술은 때로 묘한 ‘스릴’까지 전한다. 스페인의 황금기를 일군 필리페 2세를 슬쩍 지나쳐 그가 죽인 아들 돈 카를로스 왕자를 말한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는 반면,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이 계몽군주의 또다른 전형으로 등장한다.
그러니까 학창 시절 ‘지겹도록’ 공부한 서양사의 많은 주역들이 이 책에서는 ‘조연’에 불과한 것이다. 등장은 하는데 대사가 몇마디 없다. 나폴레옹, 콜럼버스, 볼테르 등 몇 명의 예외도 있지만, 조연들이 꾸며가는 서양의 샛강을 끝내 지배하지는 못한다. 지은이는 그 샛강이 바로 서양이라는 큰 강의 근본이라고 말하고 있다.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의 베네치아, 혁명의 프랑스를 서술하는 대목은 이 책의 백미다. 그 숱한 주역들이 마치 군무(群舞)를 이루듯 속도감있게 명멸한다. 그리고 다시, 샛강에 앉은 어느 주변 인물의 삶에 주목한다. 간혹 역사에 대한 지은이의 보수적 성향이 묻어나는 대목이 있지만, 진정한 보수주의자를 접하지 못한 한국 독자들로선 기꺼이 포용할만하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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