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통
-상처입은 중년의 마음 회복기
마크 라이스 옥슬리 지음, 박명준·안병률 옮김/북인더갭·1만5500원
50플러스의 시간
-제2중년의 시대 빛나는 인생후반전 설계도
홍기빈·이승욱·박성호 등 지음/서해문집·1만4500원
할배의 탄생
-어르신과 꼰대 사이, 가난한 남성성의 시원을 찾아
최현숙 지음/이매진·1만3500원
원효대사는 삶도 죽음도 고통이라며 ‘생사고’라는 말을 남겼다. 누구나 죽음을 향해 매순간 달려가지만 인생의 ‘기로’에 선 시간은 한층 무겁기 마련. ‘잔치’가 끝난 서른, 마흔, 쉰, 그리고 노년의 시기도 그러하다.
마흔살의 고통, 마흔통
<마흔통>은 마흔살에 즐겁고 흥겨운 선상 생일 파티를 치르면서 완전히 무너져버린 한 <가디언> 기자가 자신의 고통스러운 증상을 기록한 연대기다. 런던 인근 킹스턴에서 사랑하는 아내, 세 자녀와 함께 살아온 지은이는 아무리 돌아봐도 어두운 구석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20~30대 시절에도 시간 탕진하지 않고 운동, 음악, 공부, 일을 하면서 있는 힘껏 최선을 다했지만 어느 순간 자기 비하, 공황발작, 불면증, 무기력증, 자살충동이 파도처럼 밀려 들었다고 한다. 글을 익힌 지 35년 만에 처음으로 읽을 수가 없게 됐다. 무려, 세계적 유력 일간지의 기자가 말이다!
아이들을 사랑했지만, “나는 그저 아이들이 버거웠을 뿐”이라고 고백하는 지은이는 세 자녀의 보호자로, 육아와 가사를 함께 하는 남편으로, 낮에는 프리랜서로, 밤에는 야간 편집부 근무를 꼬박 5년간 지속했다. ‘나쁜 생각’은 파괴적이었다. “나는 우울하지 않다. 그보다 훨씬 심각하다.” 한 사람이 어디까지 철저히 망가질 수 있는지를 목격하던 아내 또한 눈물 흘릴 뿐이었다.
결국 무급안식년을 쓰고 회사를 쉬면서 그는 자신을 돌아본다. “호흡을 유지하고, 정신을 차리라”는 권유에 따라 명상과 ‘마음챙김’을 했다. 레몬나무에 천천히 물을 주고 관찰력을 동원해서 신중하게 설거지, 샤워, 칫솔질을 하면서 숨쉴 공간을 마련했다. 재발과 호전을 거듭 겪으며 병을 공개했고, 기사로 만들었다.
아름답게 우리말로 옮긴 공역자 박명준과 함께, 마흔에 굴지의 출판사를 그만둔 뒤 ‘1인 출판사’를 창업하면서 세게 ‘마흔통’을 겪은 북인더갭 안병률 대표도 옮긴이로 참여했다. 이 책을 <가디언> 북섹션에서 발견하고 책으로 만들기까지 뒷이야기를 적은 후기 또한 공감을 준다.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어른의 굴레’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중년은 모든 것이 소진된 것 같은 우울감, 자기효능감 저하, 자기 비하에서 자유롭지 않다. 반면, 자신의 인생이 가장 힘들고, 자신이 가장 열심히 살아왔다고 믿게 되면 타인을 가르치려는 자세를 갖기 쉽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50+세대’는 왜 개저씨가 되었나
50대 한국의 중년에 대해 말하는 <50플러스의 시간>은 오늘날 경제성장의 주역으로 인정받은 반면, 그만큼 희생도 컸던 50~64살 한국의 중년을 다룬다. 이승욱 닛부타의 숲 정신분석클리닉 원장은 무기력한 중년에게 “여러분은 잘못한 게 전혀 없다. 착취한 누군가가 있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국가가 산업발전을 위해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 시기를 지나 뒤늦게 사춘기를 맞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얘기다. ‘자기효능감’이 낮아지고 적절하게 분노하지 못하는 일이 계속되어 자책을 반복하면 분노가 자신을 향해 우울증이 생길 수 있다.
반면, ‘개저씨’(개같은 아저씨)라는 멸칭(경멸하여 일컫는 말)을 중년세대가 얻게 된 이유도 설명한다. 자신의 인생이 가장 힘들고 가장 열심히 살아왔다고 믿게 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우리 때는 말이야~’라고 장광설을 늘어놓고 타인을 가르치려는 자세를 갖기 쉽다는 것이다. 이런 특성은 ‘자기애성 성격장애’(나르시시즘)이자 ‘자아의 비만’ 상태다. 50대 여성들도 마찬가지. 남존여비의 희생자이면서 이를 대물림하는 이들은 딸에게 “엄마의 감정 쓰레기통” 같은 기분을 종종 물려준다고 한다. 또 책은 베이비붐 세대가 다음 세대를 위해 해야 할 일(박성호), 신노년 세대의 인생이모작(최재천) 등 각계 전문가 11명이 특강한 것을 묶어 5060 세대의 자기계발서 형태를 띤다.
대한민국 가난한 ‘할배’의 고백
<할배의 탄생>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인 집단이라는 두 70대 남성의 구술사다. 71살 김용술씨와 70살 이영식(가명)씨는 각각 전라북도 부안과 강원도 횡성에서 태어났다. 김용술씨는 일제 수탈로 집안이 몰락해 제때 공부하지 못했다. 양복점 테일러, 섹스 비디오방 주인, 채소장사 등을 하면서 돈과 여자가 생길 때마다 신나게 놀러다녔고, 지금은 이혼 뒤 구두 수선을 하며 속궁합이 잘 맞는 연인과 만난다.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며 “대한민국은 유병언이 같은 사이비 교주가 나라를 쥐고 흔드는 그런 구조”라고 덧붙인다.
베트남전 참전용사 이용식은 다섯살 때부터 큰집에서 더부살이하며 눈칫밥 먹은 상처를 지금도 아프게 간직한다. 죽음이 도처에 널려 있던 전쟁터의 참혹한 장면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강력한 기억. 하지만 “그 전쟁이 진짜 베트남 국민들을 위한 것이었는지 아닌지는 확실하게는 모르겠다”고 말한다. 30년 막노동 생활에 남은 것은 질병과 맨몸뚱아리로 ‘진짜’ 깨끗하게 모은 저금뿐. 그런 그에게 국가는 도로로 수용되고 남은 3평방미터 땅을 가졌다며 재산세 2500원을 청구했다.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했을 때도 국가는 땅쪼가리 값을 ‘부동산 자산’으로 매겼다. 이씨는 “박정희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먹고살게” 했다며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를 찍었다.
김씨는 이혼을 했고 이씨는 처자식 없이 살았다. ‘정상 가족’을 향한 선망을 가진 이 가난한 노년 남성들의 삶이 군대, 폭력, 여자, 돈으로 점철됐다는 것도 닮았다. 이 시대의 ‘할배’를 구성하는 요소일까. ‘어르신’과 ‘꼰대’ 사이에서 이들은 성적 능력, 여자와 돈의 힘, 남성다움의 가치를 높이 사기 때문에 ‘승자’가 되지 못한 자신의 삶을 ‘비정상’으로 인정한다.
지은이 최현숙(59)은 성소수자인권운동가, 진보정당 활동가 출신 구술 기록자. 독거노인 생활관리사로 일하면서 2013년, 2014년 우리 시대 어머니와 할머니들의 구술생애사를 썼다. 이번 책에서는 왜 가난한 노년 남성들이 불평등을 받아들이는지, 국가는 과연 무엇인지 질문하고 진보가 이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만난 모든 구술자들의 삶은 늘, 분명히, 정치적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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