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거리
무슨 일이 있어도 각자 앞에 놓인 책을 마땅히 참고 읽어야 하는 책지성팀은, 독서 습관도 다릅니다. ‘왕고참’ 한승동 선임기자는 연필로 줄을 긋고, 책장 귀퉁이를 접어 둡니다. 최재봉 선임기자는 검은색 수성펜으로 짧은 줄을 긋습니다. 강희철 기자는 색연필로 군데군데 밑줄 긋고 페이지마커를 가끔 붙입니다. 안창현 기자도 ‘색연필파’네요. 길고 가지런히 밑줄을 칩니다. 가장 책을 더럽게 보는 저는 밑줄 긋기와 메모를 하고 페이지마커도 많이 붙입니다.
움베르토 에코는 <논문 잘 쓰는 방법>에서 규칙적인 줄긋기와 메모를 권장합니다. 리영희 선생도 책에 메모를 하고 줄을 짧게 치는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2008년 리 선생의 제안으로 <유토피아>(토마스 모어) 독서회를 할 때 보니, 선생의 일본어판 책 안쪽에는 “1972년 1월18일에 제1독을 했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유토피아가 실재했다’는 믿기 힘든 내용의 미국 신문 기사도 끼워져 있더군요. 여백에는 만년필로 기록한 메모가 보였습니다.
<유토피아>는 화폐와 사적 소유를 폐지한 공화국에 대한 혁명적인 상상, 백성 각자 ‘덕’을 가진 세상을 그립니다. 책 내용을 설명한 뒤 리 선생은 참석자들에게 “절망하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역사적 상황이 바뀔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고, “상당히 괴롭겠지만” 자신이 변화하며 기다리라고 덧붙였습니다.
경천동지할 국정 농단과 문화계 성폭력 사건들 속에 심적으로 고통받는 분들도 많으신데, 물론 책이 손에 잡히지 않겠지만, 괴로운 시간을 견딜 때는 책이 최고 아니겠습니까. 올해로 발간 500년이 된 <유토피아>를 읽는 것도 좋겠습니다. 당시 모어는 ‘금수저’ 귀족들의 부조리한 행태를 비판하며 이 책을 썼다지요. 그 유토피아에서 금은 노예의 것이었습니다.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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