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하철입니다
김효은 글·그림/문학동네·1만4500원
‘칙칙 폭폭’은 아이에게 인기만점 의성어다. 갓난아기가 ‘찌찌뽀뽀’ 발화하는 순간, 시승은 최고의 기차놀이가 된다. 땅속과 땅위를 오가는 기차, 지하철은 도시아이가 만나는 첫 기차. 끝도 없이 꼬리를 무는 상상의 소리 ‘칙칙 폭폭’과 ‘덜컹 덜컹’ 현실의 소리가 만나는 지점이다. 서울을 한바퀴 도는 지하철 2호선에는 얼마나 많은 삶이 덜컹거릴까.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가득 싣고/덜컹 덜컹 덜컹 덜컹/오늘도 우리는 달립니다.”
<나는 지하철입니다>는 지하철 2호선의 시선으로 우리네 이웃들의 이야기를 이끈다. 사람들을 싣고 내리는 ‘나’는 애니메이션 <꼬마 버스 타요>에 나오는 ‘메트’처럼 듬직하고 마음이 넓다. 일곱 칸 의자에 앉은 기쁜 마음, 바쁜 마음, 지친 마음, 막막한 마음의 사람들을 모두 보듬고 달린다. 펜으로 세밀함을 더하고 수묵의 번짐으로 따뜻함을 표현한 이 책은 한 편의 시와 같다. 말수는 간결하지만 그림 속 표정 하나하나는 수많은 속내를 말한다.
“나는 일곱 칸 의자 위 일곱 개 이름들을 하나하나 불러 봐요 덜컹 덜컹 덜커덩 덜컹.” 예쁜 딸을 더 보려고 ‘꼴등 출근’ ‘일등 퇴근’을 하며 ‘개찰구 결승선’을 달리는 회사원 완주씨, 지하철 문이 닫히기 전 골인한 그의 얼굴빛에는 달리기 1등하던 학창시절의 자부심이 배어난다. 시청역에서 풍겨오는 시원한 바다 내음의 진원지는 제주 해녀 윤복순 할머니의 하얀 보따리. “얼른 강 맛 존 밥 차려 주크라”고 물질해서 잡은 문어랑 전복을 싸들고 서울 딸네 집에 가는 참이다. 구의역에서는 신발만 보고도 어떤 사람인지 알아차리는 구두수선공 재성씨가, 강남역에서는 학원 뺑뺑이를 돌다 지친 중학생 나윤이가, 신림역에선 오늘도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하는 스물아홉살 청년 도영씨가 탄다. “빨주노초파남보, 빠지는 색 하나 없이 다 고와. 자, 한 족에 천원” 뭐든지 파는 구공철 아저씨의 입담은 저마다의 삶을 위로한다.
동시집과 다수 그림책에서 뭉클한 그림으로 이야기를 살려냈던 김효은 작가의 첫 창작책 후일담. 지하철을 오가며 그린 ‘그림 더미’를 그림책으로 만들기까지 3년이 걸렸단다. 책 속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리려고 수많은 직업의 사람들을 취재했고 스토리북 별책에 그들 이야기를 담았다. 여운이 짙은 것은 같은 공간도 몇 번이나 다시 찾아 그린 덕이다. 셔츠에 밴 시큰한 땀 냄새, 차창을 뚫고 낡은 구두를 어루만지는 햇살을 담은 그림에서 더없는 작가의 공력이 뿜어져 나온다. 4살 이상 아이에겐 기차 특유의 매력을, 어른에겐 치유를 주는 책.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그림 문학동네 제공